6/19/2024

그리스 로마 신화 - 크레테 왕가 계보



아게노르(Agenor)와 텔레파사(Telephassa)의 아들 카드모스(Cadmus)는 아레스(Ar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딸 하르모니아(Harmonia)와 결혼하여 테베(Thebes) 왕가를 일궈 냈고, 딸 에우로파(Europa)는 수컷 소로 변한 제우스(Zeus)에게 납치되어 크레테(Crete)로 가게 되었다.
Jupiter and Europa, from 'Game of Mythology' (Jeu de la Mythologie) MET DP831076
납치 당하는 에우로파
Stefano della Bella, CC0, via Wikimedia Commons, Link
에우로파(Europa)는 시녀와 꽃을 따러 나왔다가 아름다운 하얀 수컷 소를 발견했다. 그녀는 소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그 위에 올라탔는데, 그 소는 그대로 바다를 건너 크레테로 갔고, 그 곳에서 자신의 정체(=제우스)를 에우로파에게 드러낸다.  에우로파가 제우스와 아들 셋, 미노스(Minos), 라다만투스(Radamantus 혹은 Radamanthys), 사르페돈(Sarpedon)을 낳은 후, , 제우스는 그녀를 크레테에 남겨 두고 떠났다. 크레테를 떠나면서 제우스는 에우로파를 해적이나 침입자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거인 탈로스(Talos)와 사냥개 라엘라프스(Laelaps)를 선물로 주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과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딸 피라(Pyrrha)의 (아들 헬렌(Hellen) 의 아들 도로스(Dorus)의 아들 텍타무스(Tectamus)의 아들)후손인 크레테의 왕 아스테리온(Asterion 혹은 Asterius)은 에우로파를 발견하고 결혼하여 왕비로 삼고, 제우스의 아들 셋을 입양하여 의붓아버지가 되어 주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 크레테(Crete)를 얻었다. 그러면서 제우스가 에우로파에게 준 선물인 탈로스와 라엘라프스도 소유하게 되었다. 

아스테리온이 사망하자 왕위를 놓고 제우스의 세 아들이 다투게 되는데, 제우스에게 9년마다 교육과 상담을 받은 미노스가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미노스는 자신이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확고히 하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기도하는데, 포세이돈은 그 기도에 대한 답으로 눈처럼 하얀 황소를 그에게 보내며, 신에게 그 황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다. 포세이돈의 답을 받은 미노스는 왕이 되지만, 인기가 많았던 라다만투스를 질투하여 위협이 되지 않도록 국외로 추방해 버렸다. 라다만투스는 보이오티아(Boeotia)로 달아나 남편을 잃고 혼자이었던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와 결혼했다.
사르페돈(Sarpedon)은 문헌에 따라 제우스와 에우로파의 아들인 경우도 아닌 경우도 있다.
미노스는 달아난 다에달로스를 잡으려다 그의 계략에 빠져 욕조에서 삶아져 죽는다. 

Mack, Ludwig, Die Unterwelt, mitte
심판석에 앉아 있는 미노스, 아이아코스, 라다만투스(순서는 모름)
Ludwig Mack (1799-1831) 석판화, Bildhau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죽은 후 미노스는 라다만투스와 또다른 이복 형제 아이아코스(Aeacus)와 함께 지하 세계에서 죽을 이들을 심판하는 판관이 되었다. 라다만투스는 동양에서 온 이들을 심판하고, 아이아코스는 서양에서 온 이들을 심판하며, 미노스는 찬반의 수가 같을 때 결정할 권한을 가졌다. 

미노스는 너무 아름다운 그 황소가 아까운 나머지,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깨고 다른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노스에게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Pasiphaë)를 그 황소에게 미친 듯이 육체적인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Agen) Dédale et Pasiphaé - Jean Lemaire - Musée des Beaux-Arts d'Agen
나무 암소를 만들고 있는 다에달로스와 파시파에
Jean Lemair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GeorgeF.Watts-Minotauros
미노타우르스(Minotaurs)
(외롭고 슬퍼 보인다)
Enrique Palmeros Montúfar (Zeyrus Kuilg),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파시파에는 천재 다에달로스(Daedalus)에게 명령하여 나무로 만든 속이 빈 암소를 만들고 겉에 실제 암소 가죽을 씌워 실제 암소처럼 보이게 했다.  그 다음 그 안에 들어가 크레테의 황소를 속이고 관계를 맺어 머리는 황소, 몸은 사람, 그리고 황소의 꼬리가 달린 반인반수 미노타우르스(Minotaurs)를 낳았다.그리고 이름을 미노스의 의붓아버지이자 전임 왕의 이름을 따 아스테리온이라고 지었다. 다에달로스는 미노타우스를 가둬 놓을 미궁을 건설했다.

파시파에는 태양의 신 헬로스와 오세아니드(Oceanid 바다의 님프) 페르세(Perse)의 딸이다. 파시파에는 미노스가 바람피우지 못하도록 저주를 했는데(저주가 아니라 미노스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문헌도 있다.), 정사를 나눌 때, 정액을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갈이나 독사를 내뿜게 만들어, 상대 여성을 죽게 만들었다. 파시파에는 신격체이므로 부부관계를 해도 죽지는 않았지만, 자식을 얻을 수는 없었다. 아테테의 공주인 프로크리스(Procris)의 도움으로 지료를 하고, 그 둘은 여덟 명의 자녀를 낳았다. 
파시파에는 크레테 섬과 동일시 되기도 하며, 지은이에 따라 미노스와 결혼해 여덟 명의 자녀를 낳은 것이 파시파에가 아니라 아스테리온의 딸 크레테라는 이야기도 있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우스(Androgeus)는 무예에 출중했는데, 아테테에서 매 해 열리는 파나텐 축제(Panathenaic Games)에 참가하여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를 시기한 참가자들이 안드로게우스를 죽이자, 미노스는 아테네와 전쟁을 선포했다. 아테네를 정복하지 못하자, 제우스에게 기도를 해서, 아테네를 기근과 질병에 고통받게 만들었다. 견디지 못한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egeus)가 항복을 하자, 그 조건으로 9년마다 7명의 청년과 7명의 처녀를 제물로 보내게 하여 미노타우르스의 먹이로 삼았다. 

Antoinette Béfort - Theseus and Ariadne 2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주는 아리아드네
Antoinette Béfor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아이게우스 왕의 아들 테세우스(Theseus)가 제물들 사이에 끼어 크레테에 온다.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는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를 살리기 위해 다에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빠져 나올 방법을 물었고, 다에달로스는 실타래를 주며, 입구에 실 끝을 묶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말해 주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크레테를 떠날 때 함께 데려가 줄 것을 약속 받고, 그 실타래를 주었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함께 갔던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아리아드네, 그녀의 여동세 파이드라(Phaedra)를 데리고 크레테를 도망나왔다. 

아테네로 돌아가던 중 그들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낙소스(Naxos)섬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자기 아버지인 미노스를 배반한 아리아드네를 신뢰하지 않았던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 이곳에 그녀를 버리고 갔다.(혹은 신탁에서 아테나가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가라고 했단다.) 낙소스에 혼자 남겨져 상심해 있던 아리아드네를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그녀와 결혼하였고, 아리아드네는 그의 충실한 배우자가 되었다. 아리아드네가 죽은 후 디오니소스(Dionysus)는 그녀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하늘로 올려 별자리(북쪽 왕관 자리 : Corona Borealis)를 만들었다. (지은이에 따라서, 아리아드네를 보고 사랑에 빠진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남겨두고 가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아스테리온의 집(The House of Asterion)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지은 미노타우르스의 시점에서 상황을 보는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난폭하고 잔인한 생각없는 괴물로 생각되던 미노타우르스를 다른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6/13/2024

역할에 따른 Queen의 호칭


Queen을 우리나라 말로 해석할 때 여왕 혹은 왕후, 왕비라고 한다. 여왕과 왕후는 엄연히 역할과 직함, 지위가 다른데,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했는데, 역시 구별하는 호칭이 있었다.

Queen Regnant(여왕)

Queen Elizabeth II official portrait for 1959 tour (retouched) (cropped) (3-to-4 aspect ratio)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Queen of United Kingdom
Donald McKagu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왕과 동등한 계급과 지위, 직함, 권력을 지닌 여성 군주.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태어나 왕위를 물려받은 여성 왕이다. 왕(King)과 마찬가지로 주권을 소유하고 행사하며, 나라를 통치할 권리와 책임을 지닌다. 주권을 가진 나라가 왕국이 아닐 때,  여(황)제는 Empress Regnant, 공국에서는 princess regnant 또는 duchess regnant 라고 한다. 그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기에 Regnant는 생략하고 Queen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영국에는  메리 1세, 메리2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앤, 빅토리아,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스페인의 이사벨라 2세 등이 있다.

Queen Consort(왕후, 왕비)

합법적으로 혼인한 왕의 아내로 왕과 사회적 지위를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한 형태이기 때문에 흔히 배우자를 뜻하는 consort를 생략하고 그냥 queen이라 불리곤 한다. 왕의 아내이기 때문에 군주와 동등한 지위와, 대관식, 의례를 받지만, 왕의 정치적 권력과, 군사력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주권국이 왕국이 아닐 때는 empress consort, princess concsort 나 duchess consort라고 하지만 가장 흔한 형태이기 때문에 역시 consort는 생략된다. Queen regnant 와 Queen consort 모두 Queen이라 불려 혼동되지만 큰 차이가 있다.

Catherine de Médicis - entourage de François Clouet
캐서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Queen consort of France (Henr II, 1547.03.31 – 1559.07.10)
Queen regent of France (Charles IX, 1560.12.05 – 1563.08.17)
Workshop of François Cloue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그러나 여왕의 남편은 king consort라 부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남성이 왕위를 계승해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king과 queen이라 할 때 queen은 왕후를 뜻하므로, king보다 queen의 직함이 낮은 것으로 인식된다. 또 consort를 생략했을 때, king과 queen이라 하면 king이 주권자로 느껴진다. 여왕의 배우자가 여왕 보다 높은 직함을 가질 수 없으므로, king consort라는 단어는 보통 사용하지 않는다.  일관된 단어는 없는데, prince consort라 부르는게 일반적이라 한다. 

보통 역할은 왕의 조력자로서, 왕실 내의 인물들을 관리하고, 자식 교육, 왕실 사람들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유럽에서 왕의 혼인은 보통 다른 나라의 왕족과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화적 교류자의 역할도 했다. 왕의 총애가 큰 경우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왕을 뒤에 업은 권력이으로 왕이 사망하면, queen 직함 외에 아무 힘도 가질 수 없다.   

Queen Dowager(왕태후, 왕대비, 왕의 미망인)

왕이 사망하면 queen consort는 queen dowager가 된다. 이전 왕후로 왕족의 대우를 받고 살지만, the queen이라 언급되지 않고, a queen이라 한다(위의 두 queen은 the Queen이다.).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리말하고 달라서 해석은 못하겠다. 왕이 일찍 죽어 빨리 바뀌면, 여러 명의 queen dowager가 존재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대왕 대비, 왕대비). 주권국이 왕국이 아니면 역시 Empress dowager, princess dowager 등 이다. 

Queen Mother(왕태후, 왕대비, 왕의 모후)

왕이나 여왕의 어머니로, 왕후였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queen dowager는 queen mother이기도 하지만,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면 queen mother는 되지 못하고, queen dowager로 남게 된다. queen mother 였다가 왕인 자식이 먼저 죽으면, queen mother라는 직함은 잃고 queen dowager로 남는다. 

왕이 자식에게 양위하고 자식이 새로 왕위에 올랐다면, 상왕의 Queen consort는 Queen dowager는 아니지만, Queen mother가 된다. 

딸이나 아들이 왕이 되었지만, 왕후였던 적이 없는 여성은 왕의 어머니로서 왕족의 대우는 받지만 Queen Mother란 직함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입해 본다면, 유명한 왕후 중 선조의 비였던 인목대비(아들 영창대군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와 영조의 비였던 정순왕후 (정조는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어 왕세손이 되었다.)는 Queen mother가 되지 못한  Queen Dowager 이다.

이 기준에서 인수대비는 세자빈이었지만, 의경세자가 일찍 죽어, 왕후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Queen이란 호칭 자체를 붙이지 못하며, Queen Mother라 불릴 수 없다. 사실 성종도 예종(성종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성종의 어머니도 아니니, 왕후가 되지 못한, 왕의 어머니도 아닌 셈이다. 

Queen Regent(섭정 왕후, 섭정 왕태후)

왕이 외국으로 오랜 기간 출정을 나가 자리를 비울 때, 혹은 몸이 아파 직접 통치를 못할 때, 자신의 권력을 왕후에게 위임했을 경우 왕후는 Queen Regent가 된다.  또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세워졌는데, 너무 어려 직접 통치하기 어려워 왕태후가 섭정으로 선정되었을 경우도 Queen Regent가 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경우 왕위 계승권자 중  순위가 가장 높은 성인이 섭정을 하거나 따로 섭정관을 임명 하므로, Queen Regent는 매우 드물다.

헨리 8세가 프랑스로 출정갔을 때, 아라곤의 캐서린에게 왕권을 위임하고 갔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아라곤의 캐서린은 Queen Regent였고, 말년 건강 악화로 통치를 제대로 못할 때는 캐서린 파가 Queen Regent 였다. 헨리 8세가 죽고 어린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 때는 따로 섭정관이 임명되었기에, 캐서린 파는 queen dowager 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 임금이 왕위에 오르면 대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 경우 Queen regent이다.  세조의 비였던 정희왕후(성종 수렴청정), 중종의 비 문정왕후(문종), 명종의 비 인순왕후(선조), 영조의 비 정순왕후(순조), 순조의 비 순원왕후(헌종, 철종)가 있다. 세자빈이었다가 추존 왕비가 된 효명세자의 빈 신정왕후(고종)는 Queen Regent는 아니고 그냥 Regent 이다.  





(인물)헨리 8세는 왜 후계자 얻기가 힘들었을까? - 2

 

다섯 번째, 헨리가 남성난임이었다.[11] 출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세계적 사회 통념 상 전통적으로 건강한 자녀의 출산은 남성이 발기부전과 같은 물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능 장애를 보이지 않는 이상, 거의 절대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불임의 원인으로 남성도 주목되기 시작하여, 염색체와  음식, 운동여부와 같은 생활 습관을 조사하기 이르렀다. 

정자의 산화 스트레스(체내 활성 산소가 많아져 생체의 산화 균형이 무너진 상태)와 DNA 절단과 같은 정자의 기능에 결함을 가져오는 생식력 약화 요인들이 반복적인 유산을 일으키며 보통 임신 기간  29주 이전에 임신 실패로 나타난다는 다는 연구 보고가 증가 되고 있다고 한다.

헨리 8세는 14년의 실질적 결혼 기간 중(결혼한 상태이지만, 부부관계가 없었던 시절 제외한 기간), 처음 두 아내는 열번의 임신에 일곱 번의 유산과, 사산을 했으며, 살아남은 아들은 없었고, 세 번째 아내는 첫 아이를 출산 후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헨리는 아내를 비난했지만, 아들 계승자를 얻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설명 된 적이 없다. 기록에 따르면 앤과의 결혼 시절 부터 발기 부전과 같은 성기능 장애를 겪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비교적 건강했던 시절 그의 첫 아내와 두 번째 아내가 모두 그렇게 많은 사산과 유산을 겪었다는 것은 아내들 보다는 헨리에게 결함이 있을 확률이 크다고 본다. 엘리자베스 블런트는 정부였기 때문에 첫 아이이자 아들인 헨리 피츠로이 외에 기록이 없어 그 이후 유산이나 사산을 겪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헨리와 헤어진 후 두 번 결혼하여 어른까지 성장한 건강한 아이를 6명 두었다는 것과, 살아 남은 헨리의 자손들이 자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헨리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을 더 크게 한다고 설명한다. 

헨리의 가족 출산력을 살펴보면, 외가 쪽은 아주 출산력이 좋아  외할아버지 에드워드 4세는 적자 10명, 사생아 5명 총 15명의 아이를 낳았고 한 명만 유아 때 죽었다. 에드워드 4세의 아버지 리차드 플랜테저넷( Richard Plantagenet)은 세실리 네빌(Cecily Neville) 과의 사이에서 12명의 적자를 낳았고 8명이 성인에 이를 때까지 살았다.  

헨리의 친가 쪽은 출산력이 그보다 낮았다.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요크(에드워드 4세 딸)은  6명의 아이를 가졌는데, 한 명은 어려서 죽고 아더는 15세때 죽었다. 헨리 7세는 외동이었는데, 아버지는 26세때 죽었고, 어머니인 마가렛 뷰포드는 세 번 재혼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 헨리의 아버지 쪽 증조 할아버지 역시 외동이었다. 

아라곤의 캐서린과 앤 불린 가족의 출산력은 상당히 좋다.

헨리와 그의 아내에게서 나타난 출산 문제는 그 시절 그와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부부(하워드와 시모어을 가계들을 조사)들의 출산력을 조사해 비교해 보아도 비정상이었다.  그 조사에서 보통 5-6명의 아이를 낳았고 유산이나 사산은 약 10%정도 일어났다. 

헨리 8세의 잠재적인 불임 요인으로, 젊어서는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던 것, 30대 들며 급격히 살이 쪄 말년에는 180kg에 달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궁정 기록에서 식단을 살펴 보면, 끊임없는 기념식, 화려한 파티, 연회를 열었고, 자유롭게 술을 마셨다. 최고의 음식은 다양한 고기였기 때문에 지나친 고기/단백질을 섭취했고, 많은 빵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했으며, 채소나 콩류는 거의 먹지 않았다. 과일은 익히거나 설탕에 절여 먹었다. 그 시절 식사는 군주의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기 때문에 아주 푸짐한 비싼 음식으로 채워졌다. 

젊어서는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고(심한 운동은 몸에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영양 불균형으로 비타민C 부족에 따른 괴혈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비만으로 인한 온갖 성인병(당뇨, 고혈압)에, 변비, 통풍,  다리의 거대한 개방성 궤양으로 인한 통증은  생식력 및 정자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자에 손상(DNS Fragmentation)을 입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헨리 8세의 난임으로 원하는 후계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란 이론이다.

여섯 번째, 헨리가 매독 환자였다.[12

매독(Syphilis)은 매독균(Treponema pallidum)에 의한 세균성 전염병이며 성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성병으로, 성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것(후천성 매독)이 일반적이나, 매독균에 감염된 여성이 임신했을 때, 임신이나 출생 중 태아에게 수직 감염(선천성 매독)이 되기도 한다. 

감염 기간과 단계에 따라 1기 매독(세균의 침범부위에 발생하는 무통성 궤양), 2기 매독(피부 발진, 점막의 병적인 변화), 잠복 매독(증상은 없는데, 감염은 되어있는 상태, 전염은 가능), 3기 매독(고무종 매독, 심혈관 매독, 신경매독, 3기에서는 감염성이 없다.)로 나뉜다.[13

매독균이 뇌, 수막, 척수로 침범하여 나타나는 신경 매독은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행동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치매가 동반되는 기억상실, 판단 장애, 감정 조절 장애, 정신 착란을 보인다. 더 진행되면, 치매와 사지마비가 심해지고 진행성 보행실조도 나타날 수 있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3-5년 이내에 사망한다. [14] 중년 이후 헨리 8세의 급격한 성격변화와 이상행동, 건강악화 등을 이것으로 설명한다. 

 임산부에게서 태아에게 매독이 감염된 경우, 수 많은 질병과 장애를 유발하지만,  감염된 태아 중 40%는 출생 전후기에 사망한다.[15] 아라곤의 캐서린과 앤 불린이 겪은 여러 번의 유산과 사산, 첫 아들의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한 것을 선천성 매독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 매독 치료 방법은 환자를 침대에서 6 주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고, 수은으로 치료를 하는데, 헨리 8세에게 그러한 치료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12]. 헨리가 매독 환자였을 경우, 성관계를 한 상대방에게 옮기는데, 그의 정부였던 엘리자베스 블런트나 메리 불린 모두 결혼 하여 건강하게 성장한 여러 자녀를 낳은 것을 보면, 그가 매독 환자였을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어도, 아직 몇몇 사람들은 헨리 8세의 몸이 잠복 매독 시기에 들어가 그 자신도, 의사들도, 그의 아내들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을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13] 매독


 
그래서 결론은? 이것 쓰느라 내가 엄청 힘들었다.

6/10/2024

(인물)헨리 8세는 왜 후계자 얻기가 힘들었을까? - 1

 

헨리의 아이들 중 그렇게 많은 수가 성인으로 크지 못하고 사망했을까. 

일반적으로 건강한 부부가 1년 동안 피임하지 않고 규칙적인 성관계에 의해 임신을 시도하는 경우 85%가 임신에 성공한다고 한다. 말년 비만에 성인병 종합병원이 되기 이전, 헨리 8세가 비교적 건강했던 아라곤의 캐서린, 앤 불린 그리고 제인 시모어와 부부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규칙적으로 임신이 됐었다. 

그러나 헨리의 아내들은 여러 번의 유산과 사산을 겪었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여섯 번(혹은 일곱 번)의 임신에서 한 명의 아이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고, 앤 불린은 세 번의 임신에서 한 명의 아이만 살아남았다. 제인 시모어는 첫 임신 후 출산 합병증으로 죽었고, 첫 아이인 에드워드 6세는 성인이 되지 못하고 15세에 죽었다. 알려진 사생아 중 헨리 피츠로이도 17세에 죽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후손은 딸 두 명 뿐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신한 아이의 거의 70%(11명 중 7명)가 유산, 사산 신생아 사망이 되었는데, 이 수치는 그 시절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높은 수치라고 한다.

위생이 불결하고,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영아 사망률이 높고,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일도 많았다고 하지만, 그 시절, 최고의 의사, 최고의 위생 환경, 최고의 음식을 누릴 수 있었던 왕과 왕비에게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렇다 보니 이에 대한 가설도 많다. 

첫 번째,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전이 아들을 낳지 못해도 후궁이 낳은 아들이 왕위를 이었고, 중전이 쫓겨 나거나 하지 않았지만, 중전은 임금에게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은 철저히 기독교 교리를 따랐기에 그런 것은 없었고,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왕위 계승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것이 헨리 8세와 앤이 왕비 쫓아내기를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호르몬 불균형을 일으키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임신과정에서는 여러가지 호르몬의 작용으로 배란, 자궁내막 증식, 착상, 임신 유지가 일어나는데, 스트레스로 어느 한 과정이 깨지면, 임신에 어려움이 일어난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내분비계를 무너뜨리고 혈액 순환 장애를 일으켜, 난소 기능을 저하 시키는데, 조기 폐경
까지 일으킨다고 한다[1]. 남성의 경우 두 차례 이상 스트레스 유발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성있는 정자의 비율이 적고, 정상형태의 정자 비율도 낮았다.  지속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정자의 생산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2]. 

아라곤의 캐서린과 앤 불린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앤의 강한 성격은 헨리 8세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을 참지 못해 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헨리 8세도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 끊임없는 압박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칩작이 유산 및 사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번째, 아라곤의 캐서린 의 경우, 가장 단순한 이유지만, 가장 일어날 확률은 낮은, 그러나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이유. 그냥 우연의 일치이다. 의학 기술도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고, 위생 상태도 나빠서,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헨리 8세의 형제는 7남매 중 1명은 사산 2명은 3살 이전에 죽었고, 아라곤의 캐서린의 형제는 7남매 중 2명이 사산되었다. 양쪽에서 모두 사산된 형제가 있다는 내력도 있기 때문에, 7명 중 6명(또는 6명 중 5명)이 사산 및 신생아 사망이어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런데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이 죽었는데.

세 번째, 앤 불린의 경우, 헨리 8세는 혈액형이 Rh +(양성)이고, 앤 불린은 Rh -(음성)이기 때문이다.[4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붉은털원숭이(Maccacus rhesus)의 적혈구를 토끼나 기니피그에 접종하였더니 항체가 형성되었고, 이 면역혈청을 다시 원숭이의 적혈구와 반응시키니 응집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항혈청에 사람의 혈액을 반응시키면 응집이 일어나는 경우(Rh+)와 일어나지 않는 경우(Rh-)가 있는데, 이것으로 혈액형을 구분하며 붉은털원숭이의 이름의 첫머리에서 Rh를 따와 이름 붙였다. 현재는 50개가 넘는 항원이 발견되었는데, 보통 Rh형을 구분하는 항원은 D로 명칭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Rh+인 사람이 99% 이상, Rh-인 사람이 1%미만인데, 유럽에서는 Rh+인 사람이 86%, Rh-인 사람이 15% 정도 된다[5]. Rh+가 현성유전자, Rh-잠성유전자이다.

Rh-의 여성이 Rh+의 남성과 아이를 가지면, 아이는 일반적으로 Rh+의 혈액형을 갖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혈액형 부적합 임신이라고 한다. 이 경우 두 번째 아이부터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이 발생한다.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은 일종의 동종면역 질환으로 산모의 면역글로불린 G 분자(항체의 일종)가 태반을 통과해서 태아 적혈구의 항원을 공격하여 세포를 분해, 파괴하는 용혈반응을 일으킨다. 용혈이 심해지면 빈혈, 저산소증, 심부전, 부종이 일어나고, 파괴된 혈구 생성을 위해 간이나 비장 비대해진다. 적혈구가 파괴되면 빌리루빈이 생성되는데 일반적인 경우에는 간에서 수용성으로 변해 배출되지만, 용혈 질환처럼 너무 많으면 처리되지 못한 비수용성 빌리루빈이 뇌와 척수의 혈뇌장벽을 통과하여 핵황달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6]

태반을 지나 혈액이 이동하는 태아-산모 간 출혈은 출산, 유산, 임신 중 태반 파열(주로 외상에 의해 일어난다.) 등의 경우에 일어난다. Rh- 여성의 첫 임신에서 산모가 아직 항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출산 중 태반을 통해 태아의 혈액 에 노출된 산모의 몸에 Rh 항원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게 된다. 두 번째 임신부터 산모 몸 속에 있던 항체가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 적혈구에 있는 항원을 공격해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을 일으킨다.  현대에는 첫 아이 임신 28주-32주 사이에 한 번, 분만 후 72시간 이내에 한 번 항 Rho(D)면역글로불린을 주사하면 다음 임신에서 혈액형 부적합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대부분의 경우 태아가 사망에 이르렀다. 

앤 불린의 경우 첫 아이는 건강하게 출산, 그 이후 계속되는 유산과 사산은, 산모의 Rh 혈액형 부적합 임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 헨리 8세가 맥레오드 증후군(MacLeod Syndrom)을 가진 Kell 양성 혈액형군이다. 이는 혈액형 부적합 임신에 따른 태아의 유산, 사산 뿐아니라, 헨리 8세의 중년 이후 급격한 성격 변화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물고고학자 카트리나 뱅크스 위틀리(Catrina Banks Whitley)와 인류학자 키라 그래이머(Kyra Kramer)가 연구를 통해 주장했다.[7]

Kell 혈액형군은 1945년  태아신생아용혈질환을 유발한 항체(항-K로 표시)를 지녔다고 처음으로 밝혀진 환자 켈러허(Kelleher)라는 임산부의 이름에서 따왔다. Kell 혈액형의 항원은 25종이나 되는데, 가장 강력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인 K 항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Kell 양성이 발견된 적은 없고, 백인의 경우 약 9%, 흑인 약 2%, 아랍인 약 25% 가 항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8]

 Kell 혈액형군 역시 , Kell 음성 여성이 Kell 양성 아이를 가질 경우, 그 임신은 혈액형 부적합 임신이 되며, 첫째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지만, 다음 아이부터는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의 발생으로 유산이나 사산되게 된다. 전형적인 혈액형 부적합 임신 양상을 보인 앤 불린 외에도 살아 남은 아이들인 엘리자베스 블런트의 헨리 피츠로이, 제인 시모어의 에드워드 모두 첫 번째 아이였다. 아라곤의 캐서린의 경우 첫 아이가 사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하나, 첫 임신에서도 Kell 항원 민감성이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으며, 다섯 째인 메리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그녀가 헨리 8세에게서 잠성 유전자를 물려 받아 K 항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위틀리와 크래이머는 주장했다. 그들은 헨리 8세의 어머니 쪽 증조 할머니인 룩셈부르크의 자케타(Jacquetta of Luxemburg)에게서 Kell 항원 양성 유전자가 전파한 것을 보고 있다. 자케타의 여성 후손은 일반적으로 후손을 잇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남성 후손들은 실패 양상이 관찰되었다고 설명했다.&nbsp

맥레오드 증후군은 X 염색체에 연관된 Kell 혈액형군 체계의 잠성 유전 장애이다. X-염색체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X 염색체가 두 개인 여성의 경우 두 개 다 문제 염색체이어야 나타나 나지만, 남성에게는 바로 나타난다. 이 증후군은 젊어서는 증상이 없다가 30대 에서 40대에 발현하기 시작한다.  말초신경병증, 신경병증, 용혈성 빈혈 등이 나타나고, 또 팔 다리가 통제되지 않고 움직이는 무도병, 경련, 발작, 행동장애 및 치매와 유사한 인지장애도 나타난다.

HenryVIII 1509
1509년의 헨리 8세
Attributed to Meynnart Wewyck,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Henry VIII of England, by Hans Holbein
1537년 경의 헨리 8세
Hans Holbein the Young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얼마나 급격하게 변했던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스타키(David Starkey)는  "두 명의 헨리가 있다.  늙은 그와 젊은 그"라고 말했다. 젊은 헨리는 운동과 음악, 아라곤의 캐서린을 사랑했으며, 잘생기고, 활력 넘치는, 너그럽고 헌신적인 통치자였다. 늙은 헨리는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고,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으며, 정치적 반대파뿐 아니라 같은 편도 눈 밖에 나면 거리낌없이 제거할 정도로 돌변했다" 고 묘사했다고 한다.[9] 또  중년부터 엄청나게 살이 쪄 비만과 다리 질환으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해 말년에 가마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이러한 보행불가도 다리에 위축증이 나타났다는 맥레오드 증후군의 사례와 일치한다. 

맥레오드 증후군 환자는 같은 X 염색체의 근접한 위치에 있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만성육아종성 질환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9], 헨리 8세의 만성적인 다리 궤양도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정신적 정서적 불안정성은 죽기 십 여 년 전 부터는 일부 사람들이 행동 정신 장애로 분류할 정도까지 증가했는데, 이러한 급격한 성격 변화도 맥레오드 증후군의 증상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위틀리와 크레이머는 헨리 8세의 DNA 테스트를 위해 허가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10]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