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2024

(인물)헨리 8세는 왜 후계자 얻기가 힘들었을까? - 1

 

헨리의 아이들 중 그렇게 많은 수가 성인으로 크지 못하고 사망했을까. 

일반적으로 건강한 부부가 1년 동안 피임하지 않고 규칙적인 성관계에 의해 임신을 시도하는 경우 85%가 임신에 성공한다고 한다. 말년 비만에 성인병 종합병원이 되기 이전, 헨리 8세가 비교적 건강했던 아라곤의 캐서린, 앤 불린 그리고 제인 시모어와 부부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규칙적으로 임신이 됐었다. 

그러나 헨리의 아내들은 여러 번의 유산과 사산을 겪었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여섯 번(혹은 일곱 번)의 임신에서 한 명의 아이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고, 앤 불린은 세 번의 임신에서 한 명의 아이만 살아남았다. 제인 시모어는 첫 임신 후 출산 합병증으로 죽었고, 첫 아이인 에드워드 6세는 성인이 되지 못하고 15세에 죽었다. 알려진 사생아 중 헨리 피츠로이도 17세에 죽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후손은 딸 두 명 뿐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신한 아이의 거의 70%(11명 중 7명)가 유산, 사산 신생아 사망이 되었는데, 이 수치는 그 시절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높은 수치라고 한다.

위생이 불결하고,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영아 사망률이 높고,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일도 많았다고 하지만, 그 시절, 최고의 의사, 최고의 위생 환경, 최고의 음식을 누릴 수 있었던 왕과 왕비에게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렇다 보니 이에 대한 가설도 많다. 

첫 번째,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전이 아들을 낳지 못해도 후궁이 낳은 아들이 왕위를 이었고, 중전이 쫓겨 나거나 하지 않았지만, 중전은 임금에게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은 철저히 기독교 교리를 따랐기에 그런 것은 없었고,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왕위 계승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것이 헨리 8세와 앤이 왕비 쫓아내기를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호르몬 불균형을 일으키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임신과정에서는 여러가지 호르몬의 작용으로 배란, 자궁내막 증식, 착상, 임신 유지가 일어나는데, 스트레스로 어느 한 과정이 깨지면, 임신에 어려움이 일어난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내분비계를 무너뜨리고 혈액 순환 장애를 일으켜, 난소 기능을 저하 시키는데, 조기 폐경
까지 일으킨다고 한다[1]. 남성의 경우 두 차례 이상 스트레스 유발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성있는 정자의 비율이 적고, 정상형태의 정자 비율도 낮았다.  지속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정자의 생산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2]. 

아라곤의 캐서린과 앤 불린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앤의 강한 성격은 헨리 8세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을 참지 못해 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헨리 8세도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 끊임없는 압박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칩작이 유산 및 사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번째, 아라곤의 캐서린 의 경우, 가장 단순한 이유지만, 가장 일어날 확률은 낮은, 그러나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이유. 그냥 우연의 일치이다. 의학 기술도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고, 위생 상태도 나빠서,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헨리 8세의 형제는 7남매 중 1명은 사산 2명은 3살 이전에 죽었고, 아라곤의 캐서린의 형제는 7남매 중 2명이 사산되었다. 양쪽에서 모두 사산된 형제가 있다는 내력도 있기 때문에, 7명 중 6명(또는 6명 중 5명)이 사산 및 신생아 사망이어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런데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이 죽었는데.

세 번째, 앤 불린의 경우, 헨리 8세는 혈액형이 Rh +(양성)이고, 앤 불린은 Rh -(음성)이기 때문이다.[4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붉은털원숭이(Maccacus rhesus)의 적혈구를 토끼나 기니피그에 접종하였더니 항체가 형성되었고, 이 면역혈청을 다시 원숭이의 적혈구와 반응시키니 응집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항혈청에 사람의 혈액을 반응시키면 응집이 일어나는 경우(Rh+)와 일어나지 않는 경우(Rh-)가 있는데, 이것으로 혈액형을 구분하며 붉은털원숭이의 이름의 첫머리에서 Rh를 따와 이름 붙였다. 현재는 50개가 넘는 항원이 발견되었는데, 보통 Rh형을 구분하는 항원은 D로 명칭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Rh+인 사람이 99% 이상, Rh-인 사람이 1%미만인데, 유럽에서는 Rh+인 사람이 86%, Rh-인 사람이 15% 정도 된다[5]. Rh+가 현성유전자, Rh-잠성유전자이다.

Rh-의 여성이 Rh+의 남성과 아이를 가지면, 아이는 일반적으로 Rh+의 혈액형을 갖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혈액형 부적합 임신이라고 한다. 이 경우 두 번째 아이부터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이 발생한다.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은 일종의 동종면역 질환으로 산모의 면역글로불린 G 분자(항체의 일종)가 태반을 통과해서 태아 적혈구의 항원을 공격하여 세포를 분해, 파괴하는 용혈반응을 일으킨다. 용혈이 심해지면 빈혈, 저산소증, 심부전, 부종이 일어나고, 파괴된 혈구 생성을 위해 간이나 비장 비대해진다. 적혈구가 파괴되면 빌리루빈이 생성되는데 일반적인 경우에는 간에서 수용성으로 변해 배출되지만, 용혈 질환처럼 너무 많으면 처리되지 못한 비수용성 빌리루빈이 뇌와 척수의 혈뇌장벽을 통과하여 핵황달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6]

태반을 지나 혈액이 이동하는 태아-산모 간 출혈은 출산, 유산, 임신 중 태반 파열(주로 외상에 의해 일어난다.) 등의 경우에 일어난다. Rh- 여성의 첫 임신에서 산모가 아직 항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출산 중 태반을 통해 태아의 혈액 에 노출된 산모의 몸에 Rh 항원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게 된다. 두 번째 임신부터 산모 몸 속에 있던 항체가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 적혈구에 있는 항원을 공격해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을 일으킨다.  현대에는 첫 아이 임신 28주-32주 사이에 한 번, 분만 후 72시간 이내에 한 번 항 Rho(D)면역글로불린을 주사하면 다음 임신에서 혈액형 부적합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대부분의 경우 태아가 사망에 이르렀다. 

앤 불린의 경우 첫 아이는 건강하게 출산, 그 이후 계속되는 유산과 사산은, 산모의 Rh 혈액형 부적합 임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 헨리 8세가 맥레오드 증후군(MacLeod Syndrom)을 가진 Kell 양성 혈액형군이다. 이는 혈액형 부적합 임신에 따른 태아의 유산, 사산 뿐아니라, 헨리 8세의 중년 이후 급격한 성격 변화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물고고학자 카트리나 뱅크스 위틀리(Catrina Banks Whitley)와 인류학자 키라 그래이머(Kyra Kramer)가 연구를 통해 주장했다.[7]

Kell 혈액형군은 1945년  태아신생아용혈질환을 유발한 항체(항-K로 표시)를 지녔다고 처음으로 밝혀진 환자 켈러허(Kelleher)라는 임산부의 이름에서 따왔다. Kell 혈액형의 항원은 25종이나 되는데, 가장 강력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인 K 항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Kell 양성이 발견된 적은 없고, 백인의 경우 약 9%, 흑인 약 2%, 아랍인 약 25% 가 항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8]

 Kell 혈액형군 역시 , Kell 음성 여성이 Kell 양성 아이를 가질 경우, 그 임신은 혈액형 부적합 임신이 되며, 첫째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지만, 다음 아이부터는 태아신생아 용혈 질환의 발생으로 유산이나 사산되게 된다. 전형적인 혈액형 부적합 임신 양상을 보인 앤 불린 외에도 살아 남은 아이들인 엘리자베스 블런트의 헨리 피츠로이, 제인 시모어의 에드워드 모두 첫 번째 아이였다. 아라곤의 캐서린의 경우 첫 아이가 사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하나, 첫 임신에서도 Kell 항원 민감성이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으며, 다섯 째인 메리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그녀가 헨리 8세에게서 잠성 유전자를 물려 받아 K 항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위틀리와 크래이머는 주장했다. 그들은 헨리 8세의 어머니 쪽 증조 할머니인 룩셈부르크의 자케타(Jacquetta of Luxemburg)에게서 Kell 항원 양성 유전자가 전파한 것을 보고 있다. 자케타의 여성 후손은 일반적으로 후손을 잇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남성 후손들은 실패 양상이 관찰되었다고 설명했다.&nbsp

맥레오드 증후군은 X 염색체에 연관된 Kell 혈액형군 체계의 잠성 유전 장애이다. X-염색체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X 염색체가 두 개인 여성의 경우 두 개 다 문제 염색체이어야 나타나 나지만, 남성에게는 바로 나타난다. 이 증후군은 젊어서는 증상이 없다가 30대 에서 40대에 발현하기 시작한다.  말초신경병증, 신경병증, 용혈성 빈혈 등이 나타나고, 또 팔 다리가 통제되지 않고 움직이는 무도병, 경련, 발작, 행동장애 및 치매와 유사한 인지장애도 나타난다.

HenryVIII 1509
1509년의 헨리 8세
Attributed to Meynnart Wewyck,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Henry VIII of England, by Hans Holbein
1537년 경의 헨리 8세
Hans Holbein the Young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ink

얼마나 급격하게 변했던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스타키(David Starkey)는  "두 명의 헨리가 있다.  늙은 그와 젊은 그"라고 말했다. 젊은 헨리는 운동과 음악, 아라곤의 캐서린을 사랑했으며, 잘생기고, 활력 넘치는, 너그럽고 헌신적인 통치자였다. 늙은 헨리는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고,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으며, 정치적 반대파뿐 아니라 같은 편도 눈 밖에 나면 거리낌없이 제거할 정도로 돌변했다" 고 묘사했다고 한다.[9] 또  중년부터 엄청나게 살이 쪄 비만과 다리 질환으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해 말년에 가마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이러한 보행불가도 다리에 위축증이 나타났다는 맥레오드 증후군의 사례와 일치한다. 

맥레오드 증후군 환자는 같은 X 염색체의 근접한 위치에 있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만성육아종성 질환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9], 헨리 8세의 만성적인 다리 궤양도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정신적 정서적 불안정성은 죽기 십 여 년 전 부터는 일부 사람들이 행동 정신 장애로 분류할 정도까지 증가했는데, 이러한 급격한 성격 변화도 맥레오드 증후군의 증상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위틀리와 크레이머는 헨리 8세의 DNA 테스트를 위해 허가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10]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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