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018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3)


요즘은 예수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많지 않지만, 그것도 유행인지 예전 영화는 예수가 등장하는 것 꽤 많았다.

성경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며 내가 상상한 예수는 점잖고, 화도 내지 않고, 잘 웃지도 않고, 어떤 일이든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든 기본욕구를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같았다. 성경에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임을 강조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자신을 희생하여 인간을 구원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아무 감흥없이 "그래?..." 라고 생각했다.

1973년에 제작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나에게 있어서 예수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영화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갈등하고, 좌절하고, 체념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
아마도 보수적인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영화를 마음에 안들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OST 앨범을 샀는데, 영화에 나오는 순서 그대로 음반에 노래가 실려있다.
노래 잘하는 영화배우가 아니라 전문 뮤지컬 배우를 뽑아서 만든 영화란다.

예수 역의 테드 닐리(Ted Neeley) ,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중에서
제작 : Universal Pictures
유다 역의 칼 앤더슨(Carl Anderson),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중에서
제작 : Universal Pictures
첫 장면은 지금 이 작품이 실제가 아닌 공연이라고 선언을 하듯 배우들이 버스를 타고  무대에 도착해서 준비를 하며 시작한다.

유다가 산 꼭대기에서 Heaven on Their Minds를 부른다.
그는 영화 내내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갈등하고 고뇌한다.
유다를 제외한 다른 사도과 예수의 추종자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 같다.
대사제들이 로마가 어떤 생각을 하며 예수를 주시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What's the buzz?에서 언제 예루살렘에 가냐며 묻는 사도들은 마치 소풍가기 전에 들떠있는 아이들 같다. 예수를 떠 받드는 막달라 마리아와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수가 유다는 못마땅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유다에게 예수는 상당히 신경질 적이다.

예수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발라 줄때, 그 비싼 향유로 굶주린자, 가난한자를 도울 수 있는데, 왜 낭비하냐고 유다는 말한다.(나도 늘 그것이 궁금했었다.) 예수는 없는 자를 도울 여지는 그 향유가 없더라도 충분하다고, 가난한 자들은 계속 있을 것이지만, 너는 내가 없어지면 후회할 거라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이 유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치고, 어떻게 죽을지 예상하고 있는 예수가, 고난과 죽음이 닥치기 전에  잠시나마 귀하게 여겨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애처롭다 느껴지고, 그 예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물론 전통적 해석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예수를 죽여야한다고 대사제들이 토론하는 가운데(대사제들은 정글짐을 하고있다), 예수와 사도들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군중들은 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한다.(지금으로 보면 예수는 가난한 이와 못 가진 이를 대변하는 인권운동가이다. 권력자가 좋게 볼 리가 없다).
환영하는 군중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노래하든 가사가 "Hey, JC, JC, Would you fight for me," 에서 "Would you die for me."로 변할 때 예수의 표정이 잠깐 흠칫 한다. 이 환영하던 인파가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란 것을 예감한 듯이.

예수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몬과 추종자를 바라보는 예수의 표정은 처음에는 웃고 있었지만, 그 광기와 맹목적에 점점 어두워지고, 유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 광기를 로마 병사들이 바라보고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원의 모습은 예수가 격노할 만하다. 온갖 상인에, 무기상 심지어 매춘부까지 있다. 사원이 아니라 시장판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현재의 여러 성당 및 교회의 모습이 겹져진다. 교회에서는 세금은 내지 않으려 하고, 교회를 사유물처럼 자식에게 세속을 한다. 성당에서는 우리밀이니, 친환경 제품이니, 우리농민을 돕는 일이라니 하면서 물건사라고 광고하는 모습도 흔히 보고, 성당 안에 아예 상점을 차려 놓은 것도 본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것 같은 시장판은 아니지만,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 말들 하지만, 그렇게 돈거래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예수가 본다면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화를 내고 돌아오는 예수에게 치유해 달라고 졸라 대는 나병 환자들이 예수는 힘에 겹다. 이 예수는 가여운 사람들을 위해 끝없이 희생할 만큼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고, 상황를 초월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될지 보이는 미래가 두렵고 피하고 싶다.

유다는 계속 고뇌한다. 예수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아서 모두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혼자 있던 유다는 전투기와 탱크에 쫓겨 도망가는데, 간 곳이 공교롭게도 대사제들이 있는 곳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배신하도록 신에 의해 계획 되어진 유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만든다. 대사제들에게 횡설수설하다 떠나가는 유다를, 돈을 주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유혹하는 대사제들은 정말 비열하다.

최후에 만찬에서 예수는 사도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한 제자들의 모습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한다. 순진한 다른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유다와 예수가 싸움을 벌인다.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예수에게 유다가 왜 배신을 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은 관심없으니 어서 대사제들에게 가라고 매몰차게 쫓아낸다. 자신의 고뇌를 생각조차 해 주지 않는 예수가  유다는 원망스럽다. 나는 이 영화를 계속 유다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예수보다 유다가 너무 불쌍했다.

유다가 떠나고, 세상 모르고 잠든 제자들을 보며 기도를 드린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늘 예수는 죽음을 의연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예수는 죽기 싫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냐고 절규하며 외친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역시 신은 아무 대답이 없다. 결국 체념한 듯 예수는 자기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자신을 때리고 상처입히고 죽게 하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체념하고 받아 들인다기 보다는, '네가 죽으라 하는데 내가 못할까 보냐, 봐라 내가 어떻게 죽는지를'라고 하는 독기 어린 모습이다.

예수가 잡혀갈 때 군중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떠 받든 사람이 기대에 어긋날 때 어떻게 돌변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혐의를 찾지 못했으므로, 유대의 왕 헤롯에게 보내버린다.

어설픈 분장이지만(모든 것이 자신들이 연기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기는 하니)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헤롯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나름 유쾌하고 귀염성 있다. 내 눈에 이 헤롯은 예수에게 위협을 느끼거나 질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수에 관한 많은 소문을 듣고 예수를 만나기를 고대했고, 직접 만나서 예수가 얼마나 위대한지, 정말 기적을 보이는지 보고 싶었는데,  예수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니 실망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기꾼이니 꺼지라며 다시 빌라도에게 보낸다.

유다는 자기 생각과는 달리 심한 고통을 받는 예수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어찌보면 군중의 광기에 밀려 나가던 예수를 그저 멈추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수와 그 추종자들을 군중의 광기에서 보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사제에게 농락당한 것을 깨달은 유다는 좌절해서 자살한다. 내가 항상 말하고 싶은 말을 신에게 외치며. 자신은 예언에 의해 예수를 배반하게 정해져 있었으니 예수가 죽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신의 탓이라고. 맞다. 예수는 온 세상 사람에게 추앙 받기 위해서 죽어야만 했다. 유다는 예수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하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자신에 대해 아무 변호도 하지 않는 예수에 대해 군중들의 광기는 더 심해지기만 하고,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해 적당히 군중들 기분만 맞춰주고 예수를 풀어주려는 빌라도에게 군중들은 자신들의 후손의 미래를 걸고 예수를 죽이도록 청하고, 죽기로 작정한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다.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후대에 이유없이 욕 먹는 또 하나의 희생자 빌라도.

그 다음에 유다가 부르는 Superstar는 그 때의 예수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이다. 아마도 작사가인 팀 라이스(Tim Rice)의 시선이겠지. 자신의 질문이 조롱하는 것이라 오해하지 말라며,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예수에게 질문한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대답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다.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결국은 그렇게 예수는 십가가 위에서 죽는다.
그리고 배우들이 무대를 철거하고 버스가 떠나간다. 뒤로 십가가 하나가 쓸쓸하게 서 있다.

예수를 맡은 배우는 처음 시작할 때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여 주지 않고, 갑자기 배우들 속에 나타나더니,  끝날 때도 버스에 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같이 연극을 했고, 연극이 끝난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뒤에 남겨진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듯이.

예수 부활이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다룬 영화는 반드시 예수의 부활을 다루는데, 이 영화는 그 마지막 장면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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