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2018

The Elder Edda - Preface 1


머리말(Preface)


시그푸스(Sigfus)의 아들 세문드(Sæmund)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시 모음, 엘더 에다(the Elder Edda: 운문 에다(The Poetic Edda)를 편집한 평판있는 수집가로, 매우 유명한 가문인 하랄드 일데톤(Harald Hildetonn)왕의 직계 자손이다. 그는 아이슬란드에서 그리스도교의 법이 확립된 지 약 50년 후인, 1054년-1057년 사이 아이슬란드 남쪽, 자신의 친가 거주지인 오디(Oddi)에서 태어났다; 이런 이유로, 그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 많은 수의 이교도인들과 세례를 받았지만 옛 이교도 신화 속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어서 그에게 옛 시대의 시가들을 알려 주었을 것이고, 그의 자유로운 사고는 그가 후대에게 그 시가들을 물려주게 했을 것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세문드(Sæmund)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부 자료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여행과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그의 사촌 존 오그문드손(John Ogmundson)(후에 홀룸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고, 사후 많은 성인들 중의 하나로 인정받았다.)는 로마로 가는 길에 자신의 젊은 세문드(Sæmund)와 만나 친해졌고, 1076년에 그를 아이슬란드로 대리고 왔다. 후 세문드(Sæmund)는 오디(Oddi)에서 사제가 되었으며, 거기서 많은 젊은이들이에 유익한 학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보통사람에게 있을 법하지 않아 보였던 그러한 학식의 효과는 마법이나 마술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사실상 세문드(Sæmund)가 엣 이교도 시절의 무용담이나 노래들(심지어 마법에 관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어서,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를 위대한 마법사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백마술, 또는 무해하고 방어적인 마법으로 불렸지만, 아이슬란드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평판이 아직까지 고수되고 있으며, 세대와 세대로 구전되고 있는 그와 관련된 다양하고 인기 있는 이야기들(어떤 것들은 재미있기도 하다)을 통해 그 평판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1] 세문드(Sæmund)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자신의 뒤로 하나의 작품을 업적을 남기고,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러나 그 작품은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운문에다[2]라 알려진 시 모음이 세문드(Sæmund)의 작품이라고 맨 처음 말한 사람은 스칼홀트(Skalholt)의 주교 브륀욜프 스벤손이었다.(요즘 학자들은 운문에다를 세문드 지그푸손이 지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있단다.)  1643년에 발견된 고대 필사본 the old vellum codes을 열심히 모은 사람으로, 이 책은 알려져 있는 에다의 필사본 중 가장 완전한 것이다. 그는 이것에서 복사본을 만들었고, Edda Saemundi Multiscii.라 제목을 붙였다. 이 복사본은 왕실 역사편찬가 토르페우스(Torfæus)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다른 필사본들과 함께 그 원본은 덴마크의 왕 프레드릭 3세(Frederick. III.)에게 진상되어, 지금 있는 코펜하겐의 왕실 박물관에 자리하게 되었다.[3](가 1971년 아이슬란드로 반환되었단다. 이 Thorpe의 번역본은 1906년에 쓰여진 책이라 아직 코펜하겐에 있는 것으로.) 에다의 시 중 많은 것이 불완전한 상태로 구전되어 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시를 수집한 사람이 산문을 삽입하여 결손 부분을 보완했고, 어느 정도 본래의 상태로 복구되었다.


[1] 많은 이야기 중 다음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세문드(Sæmund)는 유럽 남부에서 유명한 스승과  살고 있었는데, 그 스승에게 온갖 종류의 지식의 하사받았다.; 반면 그는 전에 배웠던 모든 것을, (너무 집중해서 공부한 나머지)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성직자 존 오그문드손(John Ogmundson)이 그의 집에 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콜(Koll)이라 했다. ; 그러나 존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슬란드 오디(Oddi)에서 태어난 세문드 시그푸손(Sæmund Sigfusson) 이라 고집하며, 그 자신에 관하여 많은 특별한 것들을 이야기 해주자,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친척인 존과 함께 그 장소에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의 스승을 속일 목적으로 존은 그 장소에서 당분간 머물며, 자주 세문드(Sæmund)와 그의 스승을 방문하다가, 어느 어두운 밤 마침내  달아났다. 스승은 곧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추적했다; 하지만 허사였고, 하늘도 너무 흐려서 그의 방식에 따라 별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읽기어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밤 낮으로 그리고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여행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밤은 날씨가 맑아, 그 스승은 별들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즉시 알아냈고, 그들의 뒤를 전 속력으로 쫓았다. 그러자, 세문드(Sæmund)는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 지금 나의 스승이 우리를 쫓고 있는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존이 어떻게 해야할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 내 신발 한짝을 벗기고, 거기에 물을 담은 다음 내 머리 위에 올려 놓으십시오.” 존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스승은 동료에게 말했다; “나쁜 소식이요. 그 이방인 존이 내 제자를 물에 빠뜨렸소. 내 제자의 이마 주위에 물이 있소.”  그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두 사람은 다시 여정을 시작했는데, 그 다음날 그 스승은 별들을 조사하다가, 놀랍게도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세문드(Sæmund)의 별을 발견했다. 스승은 다시 그 도망자들 뒤로 추적자를 보냈다. 이것을 관찰하던 세문드(Sæmund)가 말했다. “그 점성술사가 다시 우리를 쫓고 있으니, 주의를 돌려야 겠습니다.” 내 신발을 벗기고, 칼로 내 허벅지를 찌른 다음, 신발에 피를 채워, 내 머리 위에 놓으십시오.“ 존은 시키는 대로 했다. 다시 별을 응시하던 스승은 "마스터 콜(Koll)의 별 둘레에 이제 피가 있소. 그 이방인이 분명히 그를 죽였소.” 그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스승은 다시 한번 자신의 기술인 별보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 위에서 세문드(Sæmund)의 별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경탄하며 외쳤다: “ 네 제자가 아직 살아 있구나; 훨씬 잘 지내네. 내가 그를 충분한 것 이상으로 가르쳤어: 점성술과 마술 모두 그가 나를 넘어섰으니. 이제 그들이 안전하게 갈 길 가게 하자;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2] 주교 P.E. Muller는 8세기에는 훨씬 더 많은 에다의 시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Sagabibliothek II, p, 131.
[3] Codex Regius, No. 2365, 4to. 이 필사본의 필체는 14세기 초반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요즘 학자들은 고에다(The Elder Edda: 운문에다(Poetic Edda))의 저자가 세문드 시그푸손(Sæmund Sigfusson)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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