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018

The Elder Edda - Preface 2




세문드(Sæmund)의 에다라 불리는 이 모음집은 두 부분, 신화와 영웅담으로 구성된다. 그 앞부분은 영어판으로 대중에게 이제야 공개되었다. 1797년  A.S. Cottle이 번역한 이 앞부분의 번역본이 Bristol에서 출판되었는데, 나는 이 작품을 전혀 본적이 없고, Gray가 자유분방하게 번역한 베그탐의 시:발드르의 꿈(Vegtamskvida)를 제외하면 에다의 어떤 부분도 영어판을 본적 없다.

볼룬드의 시(Volundarkvida)는 그가 스웨덴의 왕 니두드(Ninud)의 영지에 거주하던 시절 그의 행적과 시련을 기념한 것이다. 볼룬드(Ger. Wieland, Fr. Veland and Galans)는 스칸디나비아와 게르만의 불칸(Vulcan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이며 다에달로스(Daedalus)이다. 잉글랜드에서 그의 이야기는 유능한 대장장이로서 매우 초기 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앵글로 색슨의 베오울프 시(the Anglo-Saxon poem of Beowulf) 안에서, 우리는 베오울프가 그렌델(Grendel)과의 전투에서 쓰러지며, 위랜드(Weland)의 작품인 자신의 갑옷을 휘겔락(Hygelac) 에게 보내고자 하는 그 영웅의 바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엘프레드(Ælfred) 왕은  자신이 번역한 보이티우스의 철학의 위안(Boethius de Consolatione)에서 fidelis ossa Fabricii, etc.(Ubi nunc fidelis ossa Fabricii manent?Where now do the bones of faithful Fabricius lie?)를  by Hwæt (hwær) Welondes? (그 유명하고 현명한 금세공인 위랜드의 뼈는 지금 어디 있는가? Where are now the bones of the famous and wise goldsmith Weland?)란 말로 표현했는데, 명백하게  faber와 동등한 호칭으로서 Fabricius 라는 적절한 이름을 취한 것이다. Exeter Book(Codex Exoniensis)에서도, 에다의 시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시가 있다. 월터 스코트(Walter Scott)는 소설 Kenilworth에서,  버크셔(Berkshir)의 대장장이 웨이랜드(Wayland Smith) 전설을 희화화하여, 옛 전통을 한심하게 곡해하는 짓을 했다. 우리는 서기 955년 이드레드(Eadred) 왕의 헌장에서 토지 경계로 표시된 위랜드 대장간(Weland's smithy)을 발견할 수 있다.

효르바르드(Hiorvard)의 아들 헬기(Helgi)의 시에는, 시 자체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 언급할 만한 것은 없다.

훈딩의 시해자(Hundingcide) 헬기(Helgi)의 시들은 볼숭(Volsung) 일족과 규쿵일족(Giukungs 또는 니플룽일족(Niflungs)에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의 앞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시에서 기려진 몇몇 인물의 관계를 아래 그림에 나타내었다.



볼숭(Volsung)과 니플룽(Niflug)의 에다 시는 함디르(Hamdir)의 시로 끝을 맺는다: 군나르의 선율(Gunnar's Melody)이란 제목의 시는 의심할 바 없이 상대적으로 후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에다의 시 사이에 자리해도 될 만큼 진정한 고대 북유럽 정신을 잘 담고 있다. 사실상 아무리 봐도 그로티(Grotti)의 시는 세문드(Sæmund)가 모은 시들 사이에 자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은 스칼타(Skalda)에만 나온다: 그러나 그 시도 아주 오래되었고,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에다 편집본, 원본과 번역본 모두에서  받아 들여졌기에, 이제는 그 시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그저 불완전해 보일 정도이다.(여기에는 군나르의 선율이나 그로티의 시는 빠져있다.)   

산문(The Prose) 또는 신(The Younger) 에다(Edda)는 일반적으로 1178년 유명한 아이슬란드 가문에서 태어난 스노리 스투를루손(Snorre Sturleson:Snorri Sturluson)가 집필한 것으로 본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 행정관을 두 번이나 역임하며 파란만장하고 야심찬 삶을 보낸 끝에 서기 1271년 자신의 세 명의 사위와 양아들에게 살해당했다[4]. 스노리가 세 살 때, 현자 세문드(Sæmund)의 손자인 오디(Oddi)의 존 롭트손(John Loptson)이 그를 수양아들로 들였다. 스노리는 20대까지 오디(Oddi)에 거주했으며, 그 시대에 가장 잘 배운 사람 중의 하나였던 자신의 양부에게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디(Oddi)에 보존되어있던 세문드(Sæmund)와 아리(Ari)의 필사본을 그가 얼마나 참고했는지 말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우리는 이 필사본들의 정확한 내용도 모른다. 그러나 산문 에다(Prose Edda)란 제목으로 지금 알려진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그 필사본으로부터 구성되었고, 스칸디나비아의 에우헤메루스(Euhemerus)라 여겨지기도 하는 스노리는, 신화의 의의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잘못된 개념에 그 신화가 더 어울리도록 단순히 몇 개의 장만을 첨가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위와 같을 수도 있다해도, 운문 에다는 13 세기부터 현재의 형태를 갖췄고,
1. 시작하는 말 : Formali(Fore discourse) 또는 Prologue
2. 길피의 속임수 : Gylfa-ginning (The deluding of Gylfi).
3. 브라기와의 대화 : Braga-roedur (Conversations of Bragi).
4. 끝맺는 말 : Eptirmali (After discourse); or Epilogue
로 구성된다.
시작하는 말과, 끝맺는 말은 스노리 자신이 썼을 것인데, 히브루(Hebrew)와 그리스(Greek), 로마(Roman),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n)의 신화와 전설을 이상하게 융합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아(Noa), 프리아모스(Priam), 오딘(Odin), 헥토르(Hector), 쏘르(Thor), 아이네이아스(Æneas), 등이 중세의 로맨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엉켜 있다. 이들 서술은 그 자체로 전혀 가치가 없으며 "산문에다(Prose Edda)"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공통점을 지니지 않는다. 53장으로 구성된 산문에다(Prose Edda:Younger Edda)는 운문에다(Poetic Edda:Elder Edda)에서 취합한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를 개략적으로 완전하게 설명해 준다.



[4] 스노리는, 그 이후에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지만, John Loptson (A.D. 1197)가 사망하였을 당시 아무런 재산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스노리가 대두된 가장 큰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과 의회의 법령을 무릅쓰고, Bersi the Rich - 참 부러운 성씨 이다.- 라 불리던 사제의 딸 Herdisa와 그가 결혼한 것 때문인데, 그 결혼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  우리가 스노리의 일생을 보고 판단해 볼 때, 그리스도교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민족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이교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파란만장하고 피비린내 나는 장면과, 똑같은 여인들의 헤픈 행동과 배신, 남자들의 후회할 줄 모르는 잔인함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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