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2018

The Elder Edda - Völuspâ 2


볼루스파(VÖLUSPÂ), 발라의 예언서(THE VALA'S PROPHECY) 2

21. 그녀[7]는 경외스러운 옛 에시르 신이 왔을 때, 혼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응시했다.

22.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왜 당신은 나를 유혹하는가? 오딘!  나는 어째서 당신이 밈(Mim:Mimir)의 순수한 우물 안에 당신의 눈[8]을 빠뜨렸는지 모두 안다." 밈(Mim)은 매일 아침 발파쎄르(Valfather:Allfather:오딘)의 맹세에 따라 벌꿀술을 마셨다. 이제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23. 무리의 우두머리는 그녀에게 반지와 목걸이, 유용한 설교와 점술력을 주었다; 그녀는 넓고 먼 온 세상을 보았다.

24. 그녀는 발키리들(Valkyriur)이 신의 사람들에게 말을 달릴 준비를 하며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스쿨드(Skuld)는 방패들 들고 있었고, 스코굴(Skögul)이 두번째에, 그 다음 군(Gunn), 힐드(Hild), 곤둘(Göndul)그리고 게이르스코굴(Geirskögul)이 있었다. 위에 말한 헤리안(Herian)의 처녀들, 발카리들은 지상 위로 말을 달릴 준비가 되었다.

25. 그녀는 지상에서 첫번째 전쟁을 기억한다. 그들이 창으로 굴베이그(Gullveig[9])를 찔렀을 때를, 그리고 높은 이의[10] 홀에서 굴베이그를 태웠을 때를. 그들은 그녀를 세 번 태웠고, 그녀는 세 번 되살아 났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그녀는 아직도 살아 있다.
Gullveig by Frølich
Gullveig by Lorenz Frølich [Public domain]
26. 그들은 그녀를 헤이디(Heidi)라 불렸다. 뛰어난 예언자 발라(Vala)인 그녀는 어디에든 왔다: 늑대를 길들였고, 마법을 알았으며, 마법을 숭배했다; 그녀는 언제나 사악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27. 그 다음 모든 권세들이 자신의 심판석으로 갔다. 모든 성스러운 신들은 거기서 회의을 열었다.  에시르가 그 죄[11]를 응징할지, 모든 신들이 속죄를 받을지를.

28. 에시르의 도시 바깥 벽이 무너졌다. 바니르(Vanir)가 분쟁을 예언하며 평원을 짓밟으며 걷는다. 오딘은 그들 사이에 창을 던진다: 그것이 세상에서의 첫번째 전쟁이다.
Æsir-Vanir war by Frølich
Æsir-Vanir war By Lorenz Frølich [Public domain]
29. 그 다음 모든 권세들이 자신의 심판석으로 갔다. 모든 성스러운 신들은 거기서 회의를 열었다. 누가 악의와 공기를 섞었는지, 아니면  서리거인(Jötun)에게 오드(Od)의 처자를 주었는지.

30. 거기서 쏘르(Thor) 혼자만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있었다 . 그는 그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거의 앉아 있지 않는다. 상호간에 만들었던, 어떤 대화도, 협정도, 신성한 맹세도 지켜지지 않았다.

31. 그녀는 헤임달(Heimdall)의 뿔나팔이 천상의 빛나는 성스러운 나무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을 안다. 그녀는 발파쎄르(Valfather)의 맹세에 따라 강이 거품을 내며 떨어지는 것을 본다. 이제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32. 동쪽의 이아른비디르(Iârnvidir)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펜리르(Fenrir)의 후손을 키웠다: 특히 그들 중 하나는, 트롤을 닮은, 달을 삼킨 자가 될 것이다.

33.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신의 자리를 붉은 유혈로 더럽힌다. 그 뒤에 여름의 햋빛은 거무스름하고, 모든 날씨는 폭풍으로 변한다. 이제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34. 저기 높은 곳에, 거인여인의 보초 에그디르(Egdir)가 즐겁게 하프를 켜며 앉아있다. 그 옆 횃대에는 피알라르(Fialar)라 불리는 밝은 붉은색 수탉이 울고있다.

35. 에시르의 굴린캄비(Gullinkambi)가 울었다. 그 새는 무리의 왕과 함께 영웅들을 깨운다; 그러나  또 다른 새가, 헬의 홀에 있는 검붉은 수탉이 땅 밑에서 운다.

36. 나는, 오딘의 아들이며, 피에 물든 신 발드르(Baldr)의 숨겨진 운명을 보았다. 가녀리고 아름다운 겨우살이가 평원에 높이 자라나 있었다.

37. 그 관목으로 만들어진,  내게는 위험하고 해로워 보이는 표창(dart). 호드르(Hödr)가 그 표창을 앞으로 던졌다; 그리고 프리그(Frigg)는 펜살리르(Fensalir)에서 비탄에 잠겼다, 발할(Valhall)의 불행을 슬퍼하며. 이제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38. 그녀는 흐베랄룬드(Hveralund)아래, 기괴한 모습으로 묶여서 누워있는 로키(Loki)를 보았다. 시귄(Sigyn)은 거기 즐거움을 잃고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앉아 있었다. 이제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39. 그 다음 발라는 그 운명적인 결박이 비틀려 떨어지려는 것을 알았다; 내장으로 만들어진 가장 견고한 결박이.

40.  동쪽으로 부터, 강이 진흙과 흙덩어리를 끌고, 악의의 골짜기를 지나 흘러 떨어진다. 그 강의 이름은 슬리드(Slîd)이다.

41. 북쪽에, 신드리(Sindri)의 종족을 위한 황금 홀이 니다-펠스(Nida-fells)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 브리미르(Brîmir)라 불리는 서리거인의 맥주 홀(Jötuns beer-hall)이 오콜니르(Okôlnir)에 서 있다.

42. 그녀는 해에서 먼 곳에 나스트론드(Nâströnd)에 홀이 하나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 홀의 문은 북쪽을 향해 있었고, 홀의 구멍에서는 독이 흘러 떨어졌다; 뱀이 등으로 그 홀을 휘감고 있다.

43. 그녀는 거기서 피에 굶주린 사람들과, 위증자들, 귀에 대고 다른 이의 아내를 유혹하는 자가 느릿느릿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니드호그(Nidhögg)는 시체들을 빨아들이고, 그 늑대는 사람들을 찢는다. 하지만 그대들은 이해한다, 아닌가?

44. 나는 더 앞을 내다보고, 라그나로그(Ragnarök)와 신들의 분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7] 여기서 발라는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고 있다.
[8] 여기서 오딘의 눈은 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9] 금의 의인화. 전성기는 금의 도입과 함께 끝을 맺었다.
[10] 예를 들면 오딘의 것; 그의 홀은 세상이다.
[11] 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



주석은 북유럽고대어를 영어로 번역한 역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첫번째 전쟁의 원인인 금을 의인화 했다고 한 굴베이그(헤이디)라는 발라를, 위키피디아를 보면, 반신(Van)으로 설명하고(프레이야라고도 함)
첫번째 전쟁은 에시르(Aesir)와 바니르(Vanir) 간의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에 대한 아스신들(Aesir)의 독점적 지배 속에 반신(Vanir)들이 들어와 더 인기가 높아졌으므로, 아스신들이 반신들을 공격했지만, 결국 그 두 신족은 화해동맹을 맺었다고.

그런데 북유럽신화를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제일 못된 쪽은 에시르라는 것.
반신과의 전쟁도 먼저 공격해서 일어나고, 
동맹 맺을때도 사기나 치고, 가만히 있는 서리거인에게도 항상 먼저 시비걸고.
서리거인과 아스신들도 혼인으로 얼마나 얽혔는데, 
그렇게 핍박을 하는데 어떻게 참고 있나. 
나는 서리거인이 에시르를 공격하는 것이 이해된다. 

그런데 저 그림들은 추운데 사는 신들인데 그림은 왜 저렇게 옷을 벗겨 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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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2018

The Elder Edda - Völuspâ 1


볼루스파(VÖLUSPÂ), 발라의 예언서(THE VALA'S PROPHECY) 1

Odin og Völven by Frølich
Lorenz Frølich [Public domain]
1. 나는 모든 거룩한 아이들, 헤임달(Heimdall)의 크고 작은 아들들에게 조용히 하기를 빈다.[5] 그대들은 내가 발파쎄르(Valfather;allfather)의 업적, 사람들의 옛 격언들, 즉 내가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2. 내가 기억하기에, 서리거인(Jötuns)은 늙은 내가 뒤에 있을 정도로 일찌기 태어났다. 나는 아홉개의 세상, 아홉개의 나무들, 땅 아래 있는 위대한 중심이 되는 나무를 기억한다.

3. 위미르(Ymir)가 살았던 옛날, 거기는 모래도, 나무도 차가운 파도도 없었다; 땅도 존재하지 않았고, 위에 하늘도 없었고, 그것은 혼란의 틈이었을 뿐, 초목도 어디에도 없다.

4. 부르(Bur)의 아들들은, 하늘의 둥근 지붕을 세우기 전에, 고귀한 가운데 땅을 만들었다.
남쪽에서 해가 그 구조물의 바위 위로 빛났다: 그 다음 땅에는 초록 수풀이 자라났다.

5. 달의 동반자인, 남쪽의 해, 그녀는 오른손으로 하늘의 말들의 방향을 바꾼다. 해는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몰랐고[6], 달은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몰랐으며, 별들은 그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몰랐다.

6. 그 다음 모든 권세Powers)들이 자신의 심판석으로 갔다. 모든 거룩한 신들은 거기서 회의를 열었다: 밤에게, 저무는 달에게 이름을 주었고, 세월을 헤아리기 위해서, 아침, 그리고 정오, 오후, 저녁을 을 정하였다.

7.  에시르(Æsir)가 이다(Ida)의 평원에서 만났다; 그들은 제단과 높은 사원을 세웠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증명했다. 용광로를 세워 귀중한 물건을 주조하고, 집게를 만들고, 도구를 제작했다.

8. 집의 식탁에서 그들은 소일거리를 했다; 그들은 즐거웠다;  그들에게 금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요툰헤임(Jötunheim)에서 강력한 세 명의 쑤르스의 여인들(Thurs-maiden)이 올 때까지는.

9. 그 다음  모든 권세들이 자신의 심판석으로 갔다, 모든 거룩한 신들은 거기서 회의를 열었다. 누가, 바다 즉 거인의 피와 창백한 뼈로부터 난장이(Dwarf) 종족을 창조해야하는지를.

10. 그 다음 드워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모트소그리르(Môtsognir)와 그에 버금가는 두린(Durin)이 창조되었다. 두린이 말한 것 처럼, 신들은 사람의 형상으로 땅에서 많은 드워프를 창조했다.

11. 뉘이(Nýi)와 니디(Nidi), 노르디(Nordri)와 수르디(Sudri), 아우스트리(Austri)와 베스트리(Vestri), 알씨오프(Althiôf), 드발린(Dvalin, 나르(Nâr)와 나인(Nâin), 니핑(Niping), 다인(Dain),비포르(Bivör), 바보르(Bavör), 봄부르(Bömbur), 노리(Nori), 안(An)과 안나르(Anar), 아이(Ai), 미오드비트니르(Miodvitnir),

12. 베이그(Veig)와 간달프(Gandâlf), 빈달프(Vindâlf), 쓰라인(Thrain), 쎄크(Thekk)와 쏘린(Thorin), 쓰로르(Thrôr), 비트르(Vitr)와 리트르(Litr), 누르(Nûr)와 뉘라드(Nýrâd), 레긴(Regin)과 라드스비드(Râdsvid). 자 나는 드워프에 대해 제대로 말했다.

13. 필리(Fili), 킬리(Kili), 푼딘(Fundin), 날리(Nali), 헵티(Hepti), 빌리(Vili), 하나르(Hanar), 스비오르(Svior), 빌링(Billing), 브루니(Bruni), 빌드(Bild), 부리(Bûri), 프라르(Frâr), 호른보리(Hornbori), 프레그(Fræg) and 로니(Lôni), 아우르방(Aurvang), 이아리(Iari), 에이킨스키알디(Eikinskialdi).

14.  드발린(Dvalin) 무리에 속한 드워프들, 로파르(Lofar)에게서 이어진 아들들에 관해 말할 시간이다. 세상의 바위, 땅의 기초로부터 나와서, 이오라(Iora)의 평원까지 간, 드워프들에 관해.

15. 드라우프니르(Draupnir)와 돌그쓰라시르(Dôlgthrasir), 하르(Hâr), 하우그스포리(Haugspori), 흘레방(Hlævang), 글로이(Glôi), 스키르비르(Skirvir), 비르비르(Virvir), 스카피드(Skafid), 아이(Ai), 알프(Alf)와 잉비(Yngvi), 에이키니스키알디(Eikinskialdi)가 있다.

16. 피알라르(Fialar)와 프로스티(Frosti), 핀(Finn)과 긴나르(Ginnar), 헤리(Heri), 회그스타리(Höggstari), 흘리오돌프(Hliôdôlf),  모인(Moin):  위에 적힌 이들이, 필멸자가 사는 동안, 로파르의 자손이라 여겨질 것이다.

17. 세 명의 전능하고 자애로운 에시르가 회합에서 나와 세상에 왔을 때, 그들은 땅에서 힘도 거의 없고, 운명도 없는 아스크(Ask)와 엠블라(Embla)를 발견했다.

18. 그들은 영혼을 소유하지 않았고, 감각도, 피도, 기동력도, 아름다운 색도 가지지 않았다. 오딘(Odin)은 그들에게 영혼을 주었고, 회니르(Hoenir)는 감각을, 로두르(Lodur)는 피를 주어 화색이 돌게 하였다.

19. 나는 높이 솟아올라 서있는, 맑은 물에 담겨있는,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Yggdrasil)을 알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이슬이 계곡으로 떨어져 폭포가 된다; 그 나무는 우르드(Urd)의 샘 위에 늘 푸르게 서있다.

20. 거기서부터, 서있는 나무아래 세 개의 홀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처녀들이 왔다. 그 홀은, 하나는 우르드(Urd), 두번째는 베르단디(Verdandi),- 판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세번째는 스쿨드(Skuld )라 불렸다.  그들은 법을 세웠고, 사람의 아들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었으며; 운명을 언도했다.


[5] 리그스말(Rigsmal:The Lay of Rig)에 헤임달(Heimdall)이 어떻게 리그(Rig)란 이름으로 인류의 세 종족의 선조가 되었지 나와 있다.
[6] 셈(Semitic)어와 마찬가지로, 독일어에서 해는 여성이고 달은 남성이다.("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보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가 남성이고, 달이 여성인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인 모양이다.)




아니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수 많은 드워프의 이름이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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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2018

The Elder Eddas - Introduction to the Voluspa


볼루스파 소개(INTRODUCTION TO THE VOLUSPA).


볼루스파의 소개로서, 방랑하는 발라 또는 예언자에 대한 다음의 설명은 바람직하고 흥미로롭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노른(Norns)을 대표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탄생할 때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는 밤에 세이드(seid; 마법의 한 종류를 뜻하는 옛 노르웨이 단어)란 수단을 이용하여 지식을 얻고, 아침에 신탁을 말했다: 아니면, 목적에 맞는 어떤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영감을 받았는데, 그런 것 없이는 완벽하게 마법을 성공할 수 없었다. 이 세이드 여인들은 북유럽 전체에 걸쳐 흔히 볼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주인이 발라를 초청하면, 그들은 특이한 옷을 입고, 때로는 많은 수의 추종자들 예를 들면, 열 다섯명의 남자와 여자들을 함께 데리고 나타났다. 발라는 예언을 하고 돈이나, 금반지, 다른 귀중한 물건들을 받았다. 가끔은 예언을 하기 위해서 강요를 할 필요도 있었다. 운수를 예언하면서, 길드에서 길드로 움직였던, 그러한 발라에 대한 옛 설명을 통해 이 여인들과 이들의 일련의 행동들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작은 발라라는 별명을 가진 쏘르비오르그(Thorbiorg)는 겨울 동안 길드에 참여했든데,  자신의 운명이나, 다음 해가 어떻게 될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대접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아주 호화롭게 준비하였다. 단을 높인 자리에 깃털을 넣은 쿠션이 놓여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한 남자가 왔다. 그녀는 가죽끈으로 묶은 푸른 망토와 야회복을 입었는데, 옷에 무릎까지 돌멩이가 박혀 있었다. 목에는 유리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머리에는 가장자리를 하얀 고양이 가죽으로 두른 검은 양가죽 후드를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지팡이 머리는 놋쇠가 씌워져 있고, 돌이 장식되어 있었다; 몸에는 주름 버섯으로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허리띠에 소환기구가 담긴 주머니를 매달고 있었다. 발에는 긴 끈과 주석 단추가 달린 거친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손에는 안쪽에 하얀 털이 달린 고양이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모두가 경건한 인사로 그녀를 맞이했다. 주인이 손으로 그녀를 자리에 안내했다. 그녀는 첫날에는 아무 예언도 하지 않았지만, 먼저 거기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저녁, 그녀는 단 높은 곳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여인들이 자신 주위에 자리하도록 하고, 여인들에게 강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어떤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 다음 그녀는 다가오는 해와 그 이후 일을 예언했다. 그리고 모두들 앞으로 나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그녀에게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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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기술될 이교되 시대부터 이어진 위대한 옛 시를 살펴보면, 이 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라나 방랑하는 예언자의 말을 빌어, 북유럽의 신화에 관련된 여러사건들과 함께 혼돈으로부터 세상의 창조, 거인과 신, 드워프,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신과 세계의 멸망과 재건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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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2018

사람의 몸은 위대하다...


사람의 몸은 위대하다..
그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의 여름 그 심한 더위에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제는 에어컨을 사야하나 하는 고민도 했었다.
작년에 더위에 잠 못이룬 적도 많았다.

휴대폰 날씨를 보니 아침 9시부터 30 ℃ 가 넘어 버렸다.
지금은 37 ℃, 체감 온도는 39 ℃ 이다.
이렇게 더운 날씨가 더 계속된 8월이 되면 또 느낌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머리 속에서 땀이 흘러내리는데
그런데 아직 견딜만 하고 느낀다.
생각보다 습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무더워지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덥다고 하는데,
에어컨 없이도 잘 참아내고 있다.

몇년의 지독한 여름을 겪으면서 몸이 적응한 것 같다.
처음엔 움직이지도 못하고, 드러누워 여름을 보내며, 내년엔 에어컨을 사야지..
겨울에는 에어컨 생각은 잊어버렸다가.
그 다음해에도 도저히 못참겠다 에어컨 성수기가 지나고 좀 가격이 내려가면 에어컨을 사야지.
그러다가 어느 해 갑자기 가을을 맞이하며, 왜 여름은 더울 때인데 더위를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니,
그 다음 해에는 생각보다 더위가 빨리 지나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37 ℃의 온도를 보며 예전에는 지금 보다 온도계가 정확하지 않아 온도가 덜 나왔었나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더위 동안 에어컨 없이 살았던 보람이 있는 걸까.
지금은 내 몸의 적응력에 칭찬을 보내고 싶다.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올해의 불볕더위도 잘 견뎌보자...






7/12/2018

The Elder Edda - Preface 2




세문드(Sæmund)의 에다라 불리는 이 모음집은 두 부분, 신화와 영웅담으로 구성된다. 그 앞부분은 영어판으로 대중에게 이제야 공개되었다. 1797년  A.S. Cottle이 번역한 이 앞부분의 번역본이 Bristol에서 출판되었는데, 나는 이 작품을 전혀 본적이 없고, Gray가 자유분방하게 번역한 베그탐의 시:발드르의 꿈(Vegtamskvida)를 제외하면 에다의 어떤 부분도 영어판을 본적 없다.

볼룬드의 시(Volundarkvida)는 그가 스웨덴의 왕 니두드(Ninud)의 영지에 거주하던 시절 그의 행적과 시련을 기념한 것이다. 볼룬드(Ger. Wieland, Fr. Veland and Galans)는 스칸디나비아와 게르만의 불칸(Vulcan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이며 다에달로스(Daedalus)이다. 잉글랜드에서 그의 이야기는 유능한 대장장이로서 매우 초기 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앵글로 색슨의 베오울프 시(the Anglo-Saxon poem of Beowulf) 안에서, 우리는 베오울프가 그렌델(Grendel)과의 전투에서 쓰러지며, 위랜드(Weland)의 작품인 자신의 갑옷을 휘겔락(Hygelac) 에게 보내고자 하는 그 영웅의 바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엘프레드(Ælfred) 왕은  자신이 번역한 보이티우스의 철학의 위안(Boethius de Consolatione)에서 fidelis ossa Fabricii, etc.(Ubi nunc fidelis ossa Fabricii manent?Where now do the bones of faithful Fabricius lie?)를  by Hwæt (hwær) Welondes? (그 유명하고 현명한 금세공인 위랜드의 뼈는 지금 어디 있는가? Where are now the bones of the famous and wise goldsmith Weland?)란 말로 표현했는데, 명백하게  faber와 동등한 호칭으로서 Fabricius 라는 적절한 이름을 취한 것이다. Exeter Book(Codex Exoniensis)에서도, 에다의 시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시가 있다. 월터 스코트(Walter Scott)는 소설 Kenilworth에서,  버크셔(Berkshir)의 대장장이 웨이랜드(Wayland Smith) 전설을 희화화하여, 옛 전통을 한심하게 곡해하는 짓을 했다. 우리는 서기 955년 이드레드(Eadred) 왕의 헌장에서 토지 경계로 표시된 위랜드 대장간(Weland's smithy)을 발견할 수 있다.

효르바르드(Hiorvard)의 아들 헬기(Helgi)의 시에는, 시 자체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 언급할 만한 것은 없다.

훈딩의 시해자(Hundingcide) 헬기(Helgi)의 시들은 볼숭(Volsung) 일족과 규쿵일족(Giukungs 또는 니플룽일족(Niflungs)에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의 앞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시에서 기려진 몇몇 인물의 관계를 아래 그림에 나타내었다.



볼숭(Volsung)과 니플룽(Niflug)의 에다 시는 함디르(Hamdir)의 시로 끝을 맺는다: 군나르의 선율(Gunnar's Melody)이란 제목의 시는 의심할 바 없이 상대적으로 후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에다의 시 사이에 자리해도 될 만큼 진정한 고대 북유럽 정신을 잘 담고 있다. 사실상 아무리 봐도 그로티(Grotti)의 시는 세문드(Sæmund)가 모은 시들 사이에 자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은 스칼타(Skalda)에만 나온다: 그러나 그 시도 아주 오래되었고,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에다 편집본, 원본과 번역본 모두에서  받아 들여졌기에, 이제는 그 시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그저 불완전해 보일 정도이다.(여기에는 군나르의 선율이나 그로티의 시는 빠져있다.)   

산문(The Prose) 또는 신(The Younger) 에다(Edda)는 일반적으로 1178년 유명한 아이슬란드 가문에서 태어난 스노리 스투를루손(Snorre Sturleson:Snorri Sturluson)가 집필한 것으로 본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 행정관을 두 번이나 역임하며 파란만장하고 야심찬 삶을 보낸 끝에 서기 1271년 자신의 세 명의 사위와 양아들에게 살해당했다[4]. 스노리가 세 살 때, 현자 세문드(Sæmund)의 손자인 오디(Oddi)의 존 롭트손(John Loptson)이 그를 수양아들로 들였다. 스노리는 20대까지 오디(Oddi)에 거주했으며, 그 시대에 가장 잘 배운 사람 중의 하나였던 자신의 양부에게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디(Oddi)에 보존되어있던 세문드(Sæmund)와 아리(Ari)의 필사본을 그가 얼마나 참고했는지 말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우리는 이 필사본들의 정확한 내용도 모른다. 그러나 산문 에다(Prose Edda)란 제목으로 지금 알려진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그 필사본으로부터 구성되었고, 스칸디나비아의 에우헤메루스(Euhemerus)라 여겨지기도 하는 스노리는, 신화의 의의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잘못된 개념에 그 신화가 더 어울리도록 단순히 몇 개의 장만을 첨가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위와 같을 수도 있다해도, 운문 에다는 13 세기부터 현재의 형태를 갖췄고,
1. 시작하는 말 : Formali(Fore discourse) 또는 Prologue
2. 길피의 속임수 : Gylfa-ginning (The deluding of Gylfi).
3. 브라기와의 대화 : Braga-roedur (Conversations of Bragi).
4. 끝맺는 말 : Eptirmali (After discourse); or Epilogue
로 구성된다.
시작하는 말과, 끝맺는 말은 스노리 자신이 썼을 것인데, 히브루(Hebrew)와 그리스(Greek), 로마(Roman),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n)의 신화와 전설을 이상하게 융합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아(Noa), 프리아모스(Priam), 오딘(Odin), 헥토르(Hector), 쏘르(Thor), 아이네이아스(Æneas), 등이 중세의 로맨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엉켜 있다. 이들 서술은 그 자체로 전혀 가치가 없으며 "산문에다(Prose Edda)"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공통점을 지니지 않는다. 53장으로 구성된 산문에다(Prose Edda:Younger Edda)는 운문에다(Poetic Edda:Elder Edda)에서 취합한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를 개략적으로 완전하게 설명해 준다.



[4] 스노리는, 그 이후에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지만, John Loptson (A.D. 1197)가 사망하였을 당시 아무런 재산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스노리가 대두된 가장 큰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과 의회의 법령을 무릅쓰고, Bersi the Rich - 참 부러운 성씨 이다.- 라 불리던 사제의 딸 Herdisa와 그가 결혼한 것 때문인데, 그 결혼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  우리가 스노리의 일생을 보고 판단해 볼 때, 그리스도교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민족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이교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파란만장하고 피비린내 나는 장면과, 똑같은 여인들의 헤픈 행동과 배신, 남자들의 후회할 줄 모르는 잔인함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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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2018

The Elder Edda - Preface 1


머리말(Preface)


시그푸스(Sigfus)의 아들 세문드(Sæmund)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시 모음, 엘더 에다(the Elder Edda: 운문 에다(The Poetic Edda)를 편집한 평판있는 수집가로, 매우 유명한 가문인 하랄드 일데톤(Harald Hildetonn)왕의 직계 자손이다. 그는 아이슬란드에서 그리스도교의 법이 확립된 지 약 50년 후인, 1054년-1057년 사이 아이슬란드 남쪽, 자신의 친가 거주지인 오디(Oddi)에서 태어났다; 이런 이유로, 그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 많은 수의 이교도인들과 세례를 받았지만 옛 이교도 신화 속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어서 그에게 옛 시대의 시가들을 알려 주었을 것이고, 그의 자유로운 사고는 그가 후대에게 그 시가들을 물려주게 했을 것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세문드(Sæmund)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부 자료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여행과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그의 사촌 존 오그문드손(John Ogmundson)(후에 홀룸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고, 사후 많은 성인들 중의 하나로 인정받았다.)는 로마로 가는 길에 자신의 젊은 세문드(Sæmund)와 만나 친해졌고, 1076년에 그를 아이슬란드로 대리고 왔다. 후 세문드(Sæmund)는 오디(Oddi)에서 사제가 되었으며, 거기서 많은 젊은이들이에 유익한 학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보통사람에게 있을 법하지 않아 보였던 그러한 학식의 효과는 마법이나 마술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사실상 세문드(Sæmund)가 엣 이교도 시절의 무용담이나 노래들(심지어 마법에 관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어서,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를 위대한 마법사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백마술, 또는 무해하고 방어적인 마법으로 불렸지만, 아이슬란드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평판이 아직까지 고수되고 있으며, 세대와 세대로 구전되고 있는 그와 관련된 다양하고 인기 있는 이야기들(어떤 것들은 재미있기도 하다)을 통해 그 평판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1] 세문드(Sæmund)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자신의 뒤로 하나의 작품을 업적을 남기고,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러나 그 작품은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운문에다[2]라 알려진 시 모음이 세문드(Sæmund)의 작품이라고 맨 처음 말한 사람은 스칼홀트(Skalholt)의 주교 브륀욜프 스벤손이었다.(요즘 학자들은 운문에다를 세문드 지그푸손이 지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있단다.)  1643년에 발견된 고대 필사본 the old vellum codes을 열심히 모은 사람으로, 이 책은 알려져 있는 에다의 필사본 중 가장 완전한 것이다. 그는 이것에서 복사본을 만들었고, Edda Saemundi Multiscii.라 제목을 붙였다. 이 복사본은 왕실 역사편찬가 토르페우스(Torfæus)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다른 필사본들과 함께 그 원본은 덴마크의 왕 프레드릭 3세(Frederick. III.)에게 진상되어, 지금 있는 코펜하겐의 왕실 박물관에 자리하게 되었다.[3](가 1971년 아이슬란드로 반환되었단다. 이 Thorpe의 번역본은 1906년에 쓰여진 책이라 아직 코펜하겐에 있는 것으로.) 에다의 시 중 많은 것이 불완전한 상태로 구전되어 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시를 수집한 사람이 산문을 삽입하여 결손 부분을 보완했고, 어느 정도 본래의 상태로 복구되었다.


[1] 많은 이야기 중 다음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세문드(Sæmund)는 유럽 남부에서 유명한 스승과  살고 있었는데, 그 스승에게 온갖 종류의 지식의 하사받았다.; 반면 그는 전에 배웠던 모든 것을, (너무 집중해서 공부한 나머지)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성직자 존 오그문드손(John Ogmundson)이 그의 집에 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콜(Koll)이라 했다. ; 그러나 존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슬란드 오디(Oddi)에서 태어난 세문드 시그푸손(Sæmund Sigfusson) 이라 고집하며, 그 자신에 관하여 많은 특별한 것들을 이야기 해주자,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친척인 존과 함께 그 장소에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의 스승을 속일 목적으로 존은 그 장소에서 당분간 머물며, 자주 세문드(Sæmund)와 그의 스승을 방문하다가, 어느 어두운 밤 마침내  달아났다. 스승은 곧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추적했다; 하지만 허사였고, 하늘도 너무 흐려서 그의 방식에 따라 별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읽기어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밤 낮으로 그리고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여행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밤은 날씨가 맑아, 그 스승은 별들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즉시 알아냈고, 그들의 뒤를 전 속력으로 쫓았다. 그러자, 세문드(Sæmund)는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 지금 나의 스승이 우리를 쫓고 있는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존이 어떻게 해야할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 내 신발 한짝을 벗기고, 거기에 물을 담은 다음 내 머리 위에 올려 놓으십시오.” 존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스승은 동료에게 말했다; “나쁜 소식이요. 그 이방인 존이 내 제자를 물에 빠뜨렸소. 내 제자의 이마 주위에 물이 있소.”  그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두 사람은 다시 여정을 시작했는데, 그 다음날 그 스승은 별들을 조사하다가, 놀랍게도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세문드(Sæmund)의 별을 발견했다. 스승은 다시 그 도망자들 뒤로 추적자를 보냈다. 이것을 관찰하던 세문드(Sæmund)가 말했다. “그 점성술사가 다시 우리를 쫓고 있으니, 주의를 돌려야 겠습니다.” 내 신발을 벗기고, 칼로 내 허벅지를 찌른 다음, 신발에 피를 채워, 내 머리 위에 놓으십시오.“ 존은 시키는 대로 했다. 다시 별을 응시하던 스승은 "마스터 콜(Koll)의 별 둘레에 이제 피가 있소. 그 이방인이 분명히 그를 죽였소.” 그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스승은 다시 한번 자신의 기술인 별보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 위에서 세문드(Sæmund)의 별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경탄하며 외쳤다: “ 네 제자가 아직 살아 있구나; 훨씬 잘 지내네. 내가 그를 충분한 것 이상으로 가르쳤어: 점성술과 마술 모두 그가 나를 넘어섰으니. 이제 그들이 안전하게 갈 길 가게 하자;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2] 주교 P.E. Muller는 8세기에는 훨씬 더 많은 에다의 시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Sagabibliothek II, p, 131.
[3] Codex Regius, No. 2365, 4to. 이 필사본의 필체는 14세기 초반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요즘 학자들은 고에다(The Elder Edda: 운문에다(Poetic Edda))의 저자가 세문드 시그푸손(Sæmund Sigfusson)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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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2018

댓글 문화


오늘도 다음이나 네이버를 돌아 다니며 뉴스를 읽는다.
매크로를 돌려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려던 드루킹 사건 때문에 요즘은 포탈 사이트에서 스스로 약간의 댓글 통제를 하는 것 같다.
나는 댓글이란 것을 쓰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아마도,
하루에 쓸 수 있는 댓글 수, 추천 수 등에 제한이 있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 뉴스에는 나오지 않은 정보가 댓글을 통해 제공되는 경우도 있어서 예전에는 뉴스를 보면서 댓글을 읽곤 했었다.
요즘은 점점 댓글을 보지 않게 된다.
제대로 된 의견을 쓰는 사람 보다는 소위 말하는 어그로, 댓글로 욕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토론 공간이 자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TV에서 방송하던 초기에, 선수나 게임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 들어가게 되었었다.
처음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 들어 갔을 때, 문자그대로 경악했었다.
모든 글이 욕으로 점철되어 있어 눈 뜨고는 못볼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나온 다음 충격을 받아 다시는 들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스타크래프트 전성기 시절 어쩌다가 다시 스갤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또 한번 놀랐다. 글들이 예전에 비해 정말 많이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욕을 쓰기는 하지만 수위가 많이 약해지고, 예전 처럼 뭔가 배설하려 든다는 느낌은 많이 없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익명의 인터넷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자정 능력이 생길 것이라고 믿게 되었었는데....

그런데 요즘의 포탈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댓글을 통해 감정 배설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예전에 욕으로 점철된 댓글은 특정 주제의 기사에 몰려들어 있었기에, 댓글 알바가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의 저질 댓글은 모든 뉴스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달려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은 아닌, 무엇인가 잘못되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도피하려는 자존감 낮고 비겁한 사람이며, 현실에서는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 글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찾아내서 망신 좀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도, 현실이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불쌍하기도 하다.


7/04/2018

노르드(북유럽) 신화




수많은 판타지 게임의 구석구석에는 노르드 신화의 여러 요소들이 밖혀있다.
스타그래프트 안에도 있다... Valkyrie.
몇 년전 세계를 강타했던 반지의 제왕에도 톨킨은 수많은 요소들을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에서 차용했다.
인간이 살고 있는 Middle-Earth도 북유럽 신화에서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인 Midgard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등장인물 이름도 완전히 북유럽 신화에서 따왔다. : Gandalf, Durin, Thrain, Thorin, Kili, Fili, Dvalin, Nâin, , Dain, Bömbur, Nori, Thrôr 신화에 나오는 Dwarf들의 이름이다.
요즘은 Marvel의 Thor 덕분에 북유럽 신화에 대해 안들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퍼졌지만, 역시 Marvel 덕분에 왜곡도 심하므로, 왜곡 없는 처음 전해져 내려오는 내용 그대로 알고 싶어졌다.
(원작에서 에시르는 로키를 아주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필요할 때는 이용해 먹는다. 난 로키가 서리거인을 모아서 아스가르드를 공격한 이유를 알 것 같다.)

Codex Regius of Eddaic Poems.jpg
Codex Regius(왕의 서)
[Public Domain], Link
북유럽 신화의  자료로는 The Younger Edda와 The Elder Edda가 대표적이다.
The Younger Edda(신에다)는 The Prose Edda(운문에다), Snorri's Edda라고 불리는데,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이었던 스노리 스투르루손(Snorri Sturluson)이 구전되어 오는 고대 북유럽 시인들이 쓴 시를 모아서 13세기 초에 집필한 것이다. 우주의 창조와 북유럽의 신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기술하였으며, 고대 시에 대한 스노리 스투르루손의 분석도 포함하고 있다.

The Elder Edda(고에다)는 Poetic Edda(운문에다)라고도 불리우는데, 수세기 동안 음유시인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것을 모은 것으로, 몇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Codex Regius(왕의 서)라는 중세 아이슬란드의 문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왕의 서는 13세기 경 쓰여졌지만, 1643년 스칼홀트(Skálholt)의 주교 브뤼뇰푸르 스베인손(Brynjólfur Sveinsson)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그 내용이 스노리가 인용한 구문의 시를 포함하고 있기에 Elder Edda라 이름 붙게 되었다.

그래서 편집자의 견해가 가장 적게 들어간 고에다와 신에다를 한번 읽어볼까 한다.





7/03/2018

(만화) 오르페우스의 창에 숨은 역사 - 2


펠릭스의 라스푸틴(Grigori Rasputin) 암살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펠릭스의 부모가 라스푸틴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아버지는 자신 앞에서 라스푸틴의 이름을 말하지도 못하게 했고, 어머니는 황후 알렉산드라에게 라스푸틴을 멀리하라고 할 정도로. 그런데 황후는 지나이다를 멀리하게 됐단다.) 펠릭스의 라스푸틴에 대한 태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았었기에, 펠릭스가 라스푸틴과 친분을 맺자 주위에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 둘은 펠릭스와 그의 형 니콜라이의 친구였던 마리아 에브게니예브나(무냐) 골로비나(Maria Evgenyeva (Munya) Golovina)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단다. 라스푸틴은 무냐를 통해 펠릭스가 자신을 따르게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모양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라스푸틴은 황제의 가족과의 친분은 소중히 했지만 러시아 귀족들은 믿지 않았는데, 왜 그가 펠릭스에게 계속 관심을 가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동성애 관계였다는 소문은 있지만, 펠릭스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부정했다고 하니 소문은 소문일뿐.)
황족과의 친분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라스푸틴에게 펠릭스는 황제의 조카딸인 자신의 아내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초대하여(이리나의 아버지는 예전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의 손자이고, 어머니는 그 당시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여동생. 니콜라스 2세는 니콜라스 1세의 증손자. 이리나와 아버지 쪽으로는 항렬이 같은데 어머니 쪽으로는 삼촌. 족보 어렵다.), 자신의 집 지하실로 유인한 뒤 음식에 청산가리를 넣어 독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자 펠릭스가 라스푸틴의 가슴에 총을 쏜 뒤 집 근처의 강의 다리로 가서 강에 시체를 버렸다.(라스푸틴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언제 라스푸틴에 대해서도 찾아 보아야 겠다.)

펠릭스는 항상 러시아의 안녕을 위하여 라스푸틴을 살해하였다고 말했지만, 그 전까지 그는 전혀 정치적인 사건에 관심이 없었고 애국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라스푸틴을 살해한 진짜 의도는 오히려 개인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라스푸틴의 암살에는 펠릭스 유수포프 외에 니콜라스 2세의 종친이며 피후견인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로마노프 대공(Grand Duke Dmitri Pavlovich Romanov, 얘도 니콜라스 1세의 증손자)과 러시아 입법의회의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Vladimir Mitrofanovich Purishkevich)도 가담하였다.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가 먼저 펠릭스에게 편지를 보내 라스푸틴의 암살을 제안하자 했다고는 하지만, 서로 인척이며 친밀한 관계였던 펠릭스와 드미트리와는 달리(황제 니콜라스2세는 펠릭스가 드미트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무척 걱정했었다고 한다. 이 관계도 소문이 그렇고 그랬는지, YouTube에서 둘 사이 묘한 기류가 흐르는 영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는 이 둘과 전혀 관련이 없었으므로 이들의 라스푸틴 살해 동기는 아직도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라스푸틴이 죽었다는 소문은 시신이 발견되기도 전에 퍼졌고, 강의 다리에서 핏자국을 두명의 노동자가 발견한 후 경찰들이 강을 수색해 암살 이틀 뒤 시신을 발견했다. 살인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되어, 수사관이 펠릭스와 드미트리, 블라디미르를 인터뷰 면담했지만 살인으로 기소하지는 않았다.

Dmitri Pavlovich of Russia Vladimir Purishkevich
드미트리 파플로비치 로마노프대공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
애국심의 발로에 의한 것이라지만 황제의 권위를 실추시킨 것이므로 황제는 그들을 그곳에서 추방하였으며, 덕분에 드미트리는 볼셰비키 혁명 와중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얼마 되지 않는 로마노프 왕조의 생존자 중의 하나이다). 드미트리는 추방 후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을 떠돌며 살다가 50세에 생을 마쳤다.
펠릭스는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니콜라스 2세가 페위된 다음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 동안 많은 자선을 베풀며 유수포프 가문이 쌓아온 명성 때문에 혁명가들도 유수포프 가문에 호의적이었고(유수포프의 이름을 딴 공동체도 있다고 함), 펠릭스 유수포프가를 자신들의 지지자라고 여겼지만, 사실 펠릭스는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모이카의 유수포프 궁을  군막사로 사용하자 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할 건물을 군막사로 사용한다고 불평했다고 함). 혼란스러운 상황에 환멸을 느낀 그는 얼마간의 보석과 가보를 가지고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정착했다.
프랑스에서 쿠티르(Couture)사업도 하고  자선도 하며 살았지만, 사업수완이 나쁘고, 대공황이 덮치며, 사업을 접었고, 씀씀이가 커서 가산을 탕진했다.  그러나 회고록 집필과 1932년 MGM이 만든 "라스푸틴과 황후(Rasputin and the Empress)" 란 영화에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이리나를 모델로 한 역할이 라스푸틴에게 유혹 당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함) 승소한 다음 그럭저럭 풍족하게 살다가 1967년 9월 27일 여생을 마쳤다.  이상한 소문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 이리나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었고, 그가 죽은 뒤 슬픔에 잠겨있던 그녀는 3년 후 세상을 떠났다.

라스푸틴의 살해에 영국 요원이 관련되었다는 이론도 있다. 라스푸틴이 황제에게 독일과의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에서 철수하기를 촉구했고, 그렇게 되면 독일이 서부전선으로 군대를 증진시킬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전쟁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 영국 요원이 라스푸틴을 암살하기로 계획했다는 것이다. 펠릭스와 함께 옥스포드 대학에 다녔던 오스왈드 레이너(Oswald Rayner)가 직접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했거나, 그가 직접 라스푸틴을 쐈다고(다 된 밥상에 영국 얹기?). 하지만 사학자들은 살해 현장에 영국 요원이 있었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며, 별로 신빙성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Rasputin: The Untold Story의 저자인 미국 학자 조셉 퍼먼(Joseph, T Furhmann)은 암살 방식의 어설픔을 볼 때 아마추어가 계획 실행한 것으로 보이므로 펠릭스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http://www.alexanderpalace.org/lostsplendor/에 가보면 그가 쓴 회고록 "Lost Splenlor"를 읽을 수 있다.



끝..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Felix_Yusupov
https://en.wikipedia.org/wiki/House_of_Yusupov
https://en.wikipedia.org/wiki/Zinaida_Yusupova
https://en.wikipedia.org/wiki/Grigori_Rasputin